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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끼고 집 사는 ‘3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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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거래 사상 최고…전세난 지친 실수요자 대거 이동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도권 주택을 중심으로 거래가 살아나고 있다. 거래량만 놓고 보면 살아난다는 표현보다 훨훨 날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3월의 서울 지역 아파트 거래량은 1만3117건으로 통계가 시작됐던 2006년 이후 3월 거래량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또한 3월 거래량뿐만 아니라 1월과 2월 거래량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분기 기준으로도 올해 1분기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거래가 잘되는 호황을 맞고 있다. 그러면 이처럼 거래가 터진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25개 자치구의 거래량 증가를 분석해 봤다.

집값 낮은 지역이 거래량도 늘어
2014년 1분기 대비 2015년 1분기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7% 증가했다. 그중에서 거래량이 많이 증가한 지역은 종로구(458%)·강북구(295%)·중구(259%)순이다. 그런데 거래량 증가율이 높다고 현재 거래가 많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적었는데 올해 거래량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 것도 거래량 증가율이 높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거래량이 적은 것인지, 아니면 올해 거래량이 많은 것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거래량 자료가 발표되기 시작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평균 데이터와 2015년 통계를 비교해 봤지만 그 결과는 같았다. 지난 9년간 1분기 거래량 평균치에 비해 종로구가 644%, 중구가 476%, 강북구가 465% 증가해 서울시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의 거래량이 이상한 게 아니라 올해의 거래량이 특이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집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지역들이라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가 ㎡당 491만 원인 것에 비해 종로구 446만 원, 강북구 327만 원, 중구 490만 원으로 평균 이하의 지역이다.

반면 전셋값은 상대적으로 높아 이들 지역에 100㎡의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산다면 종로구 1억3700만 원, 강북구 9300만 원, 중구 1억25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는 서울시 평균 1억7000만 원보다 크게 낮은 것이다. 다시 말해 거래량이 많이 늘어난 지역은 전세로 살던 실수요자가 아파트를 매입하기 위해 추가로 들어가는 자금이 다른 지역보다 적게 들어가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지난해 1분기 대비 거래량이 적게 늘어난 3개 지역은 송파구·강남구·서초구순이다. 이들 지역은 거래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송파구가 36%, 강남구가 35%, 서초구가 9% 줄어들었다. 이들 지역은 서울시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지역들이다. 이들 지역 100㎡의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실수요자가 추가 자금을 들여 그 집을 매수하려면 강남구 4억4700만 원, 서초구 3억2200만 원, 송파구 2억6800만 원이 들어간다. 앞서 거래가 많이 늘어난 3개 지역보다 3배 가까이 추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수요자들이 이들 지역에서 내 집 마련을 하기에는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연령층이 집을 사고 있는 것일까.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 담보대출 가운데 39세 이하의 대출 잔액이 2014년 2월 44조4000억 원에서 올해 2월 54조8000억 원으로 1년 새 23.6% 증가했다. 이는 40대(11.6%), 50대(7.9%), 60대 이상(7.7%)의 증가율을 크게 웃돌아 현재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주력 계층이 30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현재의 시장은 전세난에 지친 실수요자들이 대거 매매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자금력이 많지 않은 계층, 30대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거래량 급증 현상은 2006년 가을을 연상하게 한다. 2006년 봄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에 의해 시장이 주도됐다면 2006년 가을에는 실수요자들이 대거 내 집 마련을 하면서 거래량이 급증했다. 로또라고 여겨지던 판교 청약에서 떨어진 무주택자들이 대거 내 집 마련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집값 때문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면서 소위 ‘하우스 푸어’를 양산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때의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현재의 거래량 급증 현상을 우려의 눈으로 보기도 한다.

2006년 활황기와 큰 차이
그러나 2006년 활황기와 지금은 차이가 많다. 첫째 차이는 매매가 상승률이다. 작년에 비해 서울에서 거래량이 많이 늘어난 3개 지역의 1분기 매매가 상승률은 종로구 1.1%, 강북구 0.8%, 중구 0.6%로 서울시 평균 상승률 1.5%에 비해 크게 낮다.

한편 이들 지역의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석 달 간 매매가 상승률은 종로구 3.9%, 강북구 3.8%, 중구 3.4%로 서울시 평균 상승률 2.9%에 비해 크게 높았다. 그 당시는 매매가 상승을 동반한 거래였다면 지금은 매매가 상승은 적으면서 거래만 활발히 일어나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들 지역에 거래가 많이 늘어났지만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래량이 많이 늘어났다는 의미는 집을 사려는 사람도 많이 늘었지만 집을 파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그동안 거래 부진으로 집을 팔지 못한 사람들이 집을 팔게 되면서 거래가 늘었지만 매매가는 크게 오르지 않은 것이다.

반면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줄었던 강남 3구의 경우 매매가 상승률은 2.2% 정도로 거래가 많이 늘었던 3개 지역 평균 상승률 0.8%는 물론 서울시 평균 1.5%를 훌쩍 넘는다. 거래량이 적은데도 상승률이 높다는 의미는 그 지역에서 집을 팔려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의미다. 매물이 부족하니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것이고 적은 거래에도 매매가 상승률이 높은 것이다.

2006년과 다른 둘째 현상은 전셋값 비율이다. 2006년 말 서울의 전셋값 비율은 43.8%였다. 전셋값이 매매가의 절반도 되지 않았는데, 이는 자금력이 약한 세입자가 집을 사려면 집값의 최소 56.2% 대출을 받아야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 3월의 서울 아파트 전셋값 비율은 67.6%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자금이 전세금밖에 없다고 해도 32.4%의 대출만 받으면 그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2006년에 비해 대출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다. 특히 거래량이 많이 늘어난 3개 지역은 거래량이 줄어든 3개 지역보다 전셋값 비율이 6.3% 포인트나 높다.

결국 현재의 거래량 급증 현상은 아직까지 과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주택 시장이 정상화돼 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러면 이러한 활황 국면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2000년대 중반의 대세 상승기와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그 당시만 해도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실수요자와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의 구분이 모호한 시기였던 만큼 지속적인 매수세가 시장에 유입되면서 대세 상승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지금은 투자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이라기보다 실수요자가 주도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상승장을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실수요자는 전세가 만기가 되는 시기에만 시장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사철이 끝나는 여름 비수기에는 시장이 주춤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또 가을 이사철이 되면 거래가 늘면서 상승장이 펼쳐지고 이사철이 끝나면 또 비수기가 되는 현상이 반복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 푼이라도 집을 싸게 살 수 있는 시기는 남들이 모두 시장으로 달려가는 시기가 아니라 이사철이 다 끝나고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적어지는 때다. 밀짚모자는 한겨울에 마련하라는 투자 격언을 다시 한 번 떠올릴 때다. /a-cute-bear@hanmail.net(끝)

오늘의 신문 - 2024.05.1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