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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짝퉁이 미국 원조를 인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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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심기 특파원) 두 바퀴 전동차량의 대명사인 미국의 세그웨이가 중국의 스타트업 나인봇(Ninebot)에 인수되면서 또 다시 짝퉁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세그웨이가 나인봇을 상대로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에서 이번 인수가 성사됐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인수식에서 가오루펑 나인봇 최고경영자(CEO)도 이 점을 의식한 듯 “세그웨이와 나인봇 두 개의 브랜드를 모두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인수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그동안 중국은 낮은 가격을 앞세워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카피캣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베끼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삼성 갤럭시나 애플 워치가 출시되면 바로 다음 날 중국에서 똑같은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짝퉁 제품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번 인수에서 드러난 중국 기업의 새로운 전략은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아예 ‘원조’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생기업인 나인봇의 대주주 가운데 한 곳이 중국의 스마트폰 생산업체인 샤오미라는 점입니다. 나인봇은 2012년 중국 로봇 공학자들이 설립, 세그웨이와 거의 외관이 똑같은 2륜 전동 차량을 개발했습니다. 나인봇은 외발 전동 차량도 만듭니다. 샤오미가 한 벤처캐피탈과 공동으로 나인봇에 투자한 규모는 8000만 달러입니다. 세그웨이 인수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샤오미의 자금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샤오미도 초기 제품이 삼성 갤럭시 제품을 모방했다는 카피캣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후발주자로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에 빨리 진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과연 중국의 나인봇이 꺼져가는 2륜전동차, 즉 세그웨이 시장을 살릴 수 있을지 입니다. 세그웨이는 자이로스코프와 센서를 활용해, 탑승자가 두 발로 균형을 잡은 뒤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로 작동됩니다. 초반에는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으나, 실제로 구입한 소비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부 관광명소에 관람객을 위한 대여용이나 복잡한 도심지역내 경찰순찰용 정도로 활용되는 게 고작입니다. 2003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세그웨이를 타다가 넘어지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기도 했습니다.

WSJ는 세그웨이가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중국에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나인봇 측이 인수 이유를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과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정치 거물 보시라이 재판에서 뇌물로 받은 품목 중에 세그웨이도 있었지만 중국에서도 세그웨이는 낯선 제품입니다. 과연 나인봇과 샤오미가 죽어가는 세그웨이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그 때는 원조를 인수한 짝퉁기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sglee@hankyung.com(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