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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집 너머, 인생이모작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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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의 삐딱한 시선) 인생이모작이 화두다. 여기저기 이모작을 위한 조언이 즐비하다. 대체로 일모작이 있어야 이모작도 있기에 일찌감치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통 은퇴와 인생이모작을 준비할 나이쯤이면 이미 직장에서 나름 선수다. 선수는 업종별 재무, 포트폴리오, 사업성, 투자비용 등 모두를 종합하여 치킨 집을 연다. 선수가 아닌 아마추어도 치킨 집을 연다. 머리를 굴려도, 굴리지 않아도 그저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둘 모두 성공가능성이 적다. 이제는 전문성과 개성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문성과 개성은 재무나 투자계산이 아닌 즐거움에서 나온다는 데 있다. 전문적으로 즐겨본 적이 별로 없는 재무의 선수나 아마추어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캄캄하다.

한때 이원석의 <공부란 무엇인가>에 나온 치킨인생도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전에 무엇을 하였던, 지금 어떤 직함이건 직장을 은퇴한 장년의 미래는 치킨 집 아니면 아사(餓死)라는 걸 도표로 보여준다. 치킨집이 아니면 김밥천국이나 편의점 커피숍 혹은 좀 모았다면 뚜레쥬르이리라. 이런 자영업을 치킨 집으로 통칭해도 별 무리 없다. 혹은 조심스레 귀농을 말하기도 한다. 귀농? 어릴 적 농사를 지어 본 진짜 농촌출신만 겨우 가능하다.
왜 그리 치킨 집에 매달릴까? 취직해서 퇴직을 할 때까지 퇴근 후에 한 일이 치킨에 맥주를 마신일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치킨 집과 포장마차이외에 다른 일은 엄두도 안 난다. 취미가 치킨집이고 취향은 튀김인가? 양념인가? 카스인가? 맥스인가? 정도뿐이다. 취향이 강하다면 닭 강정에 크라우드생(生)을 선택할 것이다. 평생을 치킨 집에서 소주에 카스 말아먹기를 유일한 취미로 살아온 퇴직자의 눈에는 치킨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십 년 적공의 결말이다.

취미와 하비
젊었을 때부터 관심부문의 전문성을 키우려 주말이면 어느 공방을 찾아 기예를 닦았다거나 주말 텃밭을 가꾸어 성공한 전설이 있지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안 하던 짓 하다가는 앓아눕는다. 이런 것 말고 일상에서 가능한 구체적인 길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전문분야를 어떻게 키울 것인 가를 알아보자.

‘취미’를 영어 ‘하비(hobby)’로 번역한다. 잘 들여다보면 둘은 상당히 거리가 있는 단어다. 취미란 취향과 가깝다. 멜로보다는 액션영화가 취향일 수도 있고 밥보다는 국수 취향일 수 있다. 즉 취미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나 분위기다. 이에 비해 하비는 좋아하는 하는 분야를 샅샅이 파고드는 일이다. 자기의 취미를 정리, 분류하여 그 안에 나만의 세상을 건설한다. 이렇게 본다면 취미가 동양적 정서이고 하비는 서양적 분석이다.

하비, 자기표현과 전문성
하비란 죽마hobby-horse에서 유래한다. 죽마란 전쟁놀이할 때 다리 사이에 끼는 말대가리가 붙은 길쭉한 막대기다. 죽마가 취미와 유사한 하비가 된 데에는 18세기 영국 말보로공작 소속 장교였던 엉클 토비가 있다. 그는 스페인의 나무르 성 포위 전투에서 사타구니를 다쳐 성불구자가 된다. 성적인 언어가 금지되었던 시절 부상당한 부위를 답할 때마다 곤란을 겪었다. 그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무르 성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죽마를 끼고 전쟁을 재현해 보여주었다. 수없는 포위와 공격의 시뮬레이션을 하며 모형은 점점 정교해지고 결국 전쟁과 포위와 공격의 전문가가 된다. 거세라는 내적인 상처를 죽마라는 상징적인 막대기로 대체하여 대성한 것이다.

하비의 대표선수는 수집이다. 수집가를 호모콜렉투스Homo-collectus 즉 ‘수집하는 인간’이라 한다. 이들은 동전에서 우표나 레코드, 로봇이나 자동차를 수집하며 투자라고 변명한다. 투자라는 허울의 죽마놀이다. 수집가는 수집품을 정리 분류하고 질서를 부여하며 그 안에서 통치자나 신이 되고 싶어 한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다. 즉 수집가에게 수집이란 가상의 세계 건설을 통한 자기표현이다. 투자의 개념으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즐거움의 세계다. 요즘 유행하는 시뮬레이션 게임도 이와 유사하다. 결국 하비란 즐기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다.

치킨 집을 넘어서
그냥 치맥이 취향일 뿐이라면 카스 팔고 맥스 파는 흔한 치킨 집을 차릴 일이다. 그러면 통계가 정확하게 말해주듯 차리자마자 90% 쪽박이다. 흔한 치킨집의 결론은 ‘1년 이내 대부분 파산’이다. 그렇다면 치킨 집을 피해가면 안될까? 우리는 지금 치킨 집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전문성과 자기표현을 겸비한 사람이라도 자금이 부족하고 답이 없다면 치킨 집을 피할 수 없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해야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그렇다. 하비를 더한 즐거운 치킨 집은 쪽박 집과 다를 수 있다.

요즘 대학에 치킨동아리도 있다. 인터넷에도 많다. 모두 치킨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다. 이 동아리에 대학동아리부터 사회동호회까지 활동하며 전 세계의 치맥을 깊이 연구하고 수집한 치킨의 고수들이 즐비하다. 그들이 차린 치킨 집은 흔한 동네 것과 뭐가 달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치킨 집은 사업장이라기보다는 수집가의 새로운 놀이터다. 여기에 동호회라는 특전이 더한다면 금상첨화다.

서촌 금천교시장에는 젊은 사람들이 하는 감자튀김 맥주집이 있다. 밤이면 밤마다 문전성시다. 이곳은 맥주잔부터 감자튀김까지 차별성이 강하다. 그냥 학생이 알바하는 맥주집이 아니라 젊은 남학생이(심지어 여학생이 아니다!) 나름의 개성을 펼친다. 이들이 보여주는 전문성과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가 바로 성공비결이다.

인생이모작, 치킨집이 대세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비결이 있다. 먼저 취미나 취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비로 나아가 즐기며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전문성을 키워야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 안에서 자기를 표현할 방법을 찾아낸다면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전문성 있고 자기만의 개성으로 가득한 치킨 집은 더 이상 치킨집이 아니다. 명품 요리점이다. 창조경제 참 쉽다. /중앙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wesyuzna@naver.com(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