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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우빈, "묵묵히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 섹시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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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 한경 텐아시아 기자) 어떠한 규정도 거부하는, 독보적 매력의 얼굴.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길다란 팔다리, ‘꽃미남’ 배우는 많지만 김우빈처럼 자신만의 개성을 확고하게 품은 배우는 흔치않다. 물 같은 성질이 있는 배우라서 어떤 연출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경계 없이 변신하기도 한다. 실제로 ‘친구2’에서 매서운 불을 내뿜고, ‘기술자들’에서 스타로서의 특유의 상품성을 과시하더니, ‘스물’에서는 재기발랄한 코미디에도 능함을 보여줬다. 김우빈 대세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 그가 섹시한 이유다.

Q. 스무 살에 모델 일을 시작했다. 스물일곱 현재 누구나가 다 아는 스타가 됐다. 지금의 속도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김우빈:
빠르다. 과할 정도로 빠르다. 데뷔 후, 내가 지닌 능력 이상의 것들을 너무나 많이 맡겨 주셨다. 운이 좋았다. 큰일을 주시니까 그 믿음에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했다. 그럼 더 큰 일을 주시고, 또 더 노력하게 되고. 최선을 다 하고는 있는데, 아직 멀었다.

Q. 이 속도가 무섭지는 않나.
김우빈:
부담이 되기는 했다.

Q. 과거형이네.
김우빈:
이젠 그렇게 생각 안 하려고 한다. 이걸 부담이 아닌 감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동시에 더 큰 책임감도 느낀다. 조금 더 신중해지고 있고,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는 중이다.

Q. 언제부터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한 건가.
김우빈: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이게 뭐지?’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서웠다. 익숙해지니까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들, 그런 게 너무 싫고 바보 같아서 익숙함을 최대한 낯설게 느끼려고 했다.

Q. ‘내가 지닌 능력 이상의 것들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스스로의 능력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김우빈:
글쎄. 기술도 필요하고, 감성도 필요하고,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필요한 이런 직업에서 내가 아직 내 능력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표현도 서툴고 이해의 폭도 좁다. 마치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의 느낌이다. 그런 상태인데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까, 내 나름대로는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보고 이런저런 단어도 써보면서 여러 가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경험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에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을 거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Q. 어떤 배우는 ‘본인이 지닌 장점을 최고로 끌어내주는 연출가’를 선호하고, 어떤 배우는 ‘본인이 모르고 있었던 걸 끄집어내주는 연출가’를 선호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김우빈:
아직은 둘 다 좋다. 어떤 인물에 이입돼서 날뛰고 있을 때 ‘어라?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어 재미있다. 반대로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를 부각시켜서 잘 포장해 주셨을 때 감사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Q.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은 순간이라면?
김우빈:
그걸 ‘스물’의 치호를 연기하면서 많이 느꼈다. 일단 나는 기본적으로 차분한 느낌이다. 조용조용하고.

Q. 안 그래도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차분한 느낌이라 놀라는 중이다. 말도 굉장히 조근조근하게 하고.(웃음)
김우빈:
하하하. 이전보다는 많이 밝아졌다. 나름대로는 친구들 만나면 장난도 많이 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치호 같은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너무나 스스럼없이 춤추고, 소리 지르고, 미친 척 하고. 그런 것들이 낯설지만 재미있었다. 내가 몰랐던 부분을 이병헌 감독님이 많이 끄집어내주셨다.

Q. 배우 이전의 김우빈은 소극적인 편이었나.
김우빈:
굉장히 내성적이었다.

Q. 혹시 용기를 내지 못해서 놓쳐버린 것들이 있나.
김우빈:
사례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있었다. 예전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그런 내가 모델을 꿈꿨다는 게 신기하기도한데, 아마 내 안에 표현에 대한 열망이 있었겠지. 어릴 땐 그걸 표출하는 법을 몰라서 혼자 끙끙 앓았던 거고. 이제는 감정 표현에 솔직 하려고 한다. 상황 상 감정을 겉으로 티내지 말아야 할 때가 많은데, 좋은 것까지 굳이 숨겨야 하나 싶다.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진짜 자주한다. 친구들에게, 가족에게, 팬들에게, 스태프들에게, 연인이 있을 땐 연인에게. 아, 생각해 보니 연인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 안 했던 것 같다.

Q. 왜? 말하는 순간 신기루처럼 날아갈 까봐?
김우빈:
글쎄. (살짝 쑥스러운 듯) 아, 진짜 모르겠다. 하하하. (이야기 빠르게 전환시키며) 아무튼 이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하려고 한다. 그게 좋다는 걸 깨달았다.

Q. 사실 당신 인터뷰를 보다보면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말 어떨지 모르지만, 뭐랄까.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할까.
김우빈:
그럴 수 있다. 음…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신중해지려고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자꾸만 그렇게 된다, 자꾸만. 예전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현에 있어서도 대화하는데 있어서도 어른이 되어야만 하고, 어른이 되려고 하고, 신중해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왜 그렇게 어른이 되려고, 진지해 지려고 하나.
김우빈:
원래 진지한 편이긴 하다. 부모님 영향도 크고. 평범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부모님이 굉장히 진중하시고, 예의를 중시하시고, 배려심이 많으시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그런 삶의 태도를 본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 것 같다.

Q. 일거수일투족을 주목받는 스타이기에 조심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싶다.김
우빈:
있다. 조심해야한다. 말 한마디가 자칫 오해의 씨앗을….

Q. 인터뷰에서 말을 너무 조심하다보면 자칫 판에 박힌 대답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김우빈: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말을 지어내지는 않으니까. 지어내면 나중에 들통이 날 테고. 어쨌든 늘 진실을 얘기한다. 정해진 답은 똑같다. 다만 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한 말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져서 생기는 오해들이 무섭기도 하다.

Q.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온 기사들을 보면, 자기 같나.
김우빈:
아닐 때가 진짜 많다.(웃음)

Q. 인터뷰 글 옆에 괄호 쳐서 상황 설명하고 싶은, 그런?(웃음)
김우빈:
맞다. 말로 하는 것과 글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한 글자 차이인데도 묘하게 다르다. 언어의 한계 같다.

Q. 오늘 마침 만우절이다.
김우빈:
안 그래도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형이랑 친구들에게 수위가 센 거짓말을 했다. 엄청난 사기를 당했다고.(웃음) 다들 넘어왔는데, 준호만 안 속았다. (2PM) 멤버들끼리 서로 속고 속여서 그런지, 속지 않더라.

Q. 살면서 누군가에게 속은 기억이 있고, 누군가를 속인 기억도 있을 텐데, 어느 쪽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나.
김우빈: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굉장히 긍정적인 편이다. 일단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잊으려고 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 생각해봤자 안 되는 것들은 빨리 놓는다. 그럼에도 생각이 많아질 때는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Q. 집중할 때 찾는 건 뭔가.
김우빈:
운동, 좋아한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집에 작은 방이 있는데, 그 방에 미술 도구들이 많다. 이젤도 두 개도 있고, 유화, 아크릴 등 이것저것 많다. 캔버스도 한 번 살 때 호수 별로 사고. 어릴 때 미술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전문적인 기술은 없다. 행위 자체가 좋아서 할 뿐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답이 없으니까. 그래서 좋다.

Q. 팬들에게 보여준 적 있나.
김우빈:
아니. 낙서 수준이라서.(웃음)

Q. 풍경화를 많이 그리나, 인물화를 많이 그리나.
김우빈:
추상적인 걸 좋아한다. 기분을 그리기도 하고, 준비하는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기도 한다. 도구를 여러 방향으로 이용해 보기도 한다. 가령 캔버스를 4B 연필로 새까맣게 채운 다음 지우개로 쓱쓱 지우거나, 손에 물감을 묻혀서 찍어내는 식이다.

Q. ‘스물’을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김우빈: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치호는 ‘미친 말’이었다. ‘미친 말’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Q. 그래서 ‘미친 말’처럼 영화에 표현된 것 같나.
김우빈:
하하하. 나는 내 연기를 냉정하게 못 보니까, 판단할 수 없다. 내가 등장하는 씬이 나오면 속으로 ‘빨리 지나가라’ 그런다. 괜히 안절부절 하고.

Q. 그나저나 대사를 이토록 맛깔스럽게 구사할 줄이야.
김우빈: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다. 그 친구(강하늘, 준호)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아마 나이 차이가 있었다면 지금 보다 덜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을 거다. 우린 친구처럼 지냈고, 정말 친구가 됐다. 그랬기에 그런 특별한 호흡들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스물’에서 ‘아비정전’ 속 장국영이 췄던 맘보춤을 췄는데, 오늘은 장국영이 떠난 날이기도 하다. 장국영은 그렇게 떠나서 영원불멸이 된 느낌이 있다. 일찍 요절한 리버 피닉스 역시 영원한 청춘으로 남아있다. ‘스물’에서 언급된 커트 코베인도 그렇고. 동경이라는 말은 그렇지만, 적지 않은 청춘들이 짧지만 임팩트 있는 삶을 산 그들을 흠모한다. 반대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오래 남아 장인이 된 이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고.
김우빈:
어느 쪽이든 그걸 노리고 계산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순수하게 임했을 때, 그리고 모든 기운과 시기와 상황들이 맞아 떨어졌을 때 명작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지 않나 싶다. 사실 작품을 선택하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자꾸 계산하게 되고, 그래서 자꾸 버리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스물’은 정말 순수하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한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 ‘기술자들’ 다음 영화이니, 분량을 생각했다면 안 했을 거다. 하지만 분량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냥 이 작품이 좋아서,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참여했다.

Q. 시나리오를 고를 때 어떤 걸 가장 경계하나.
김우빈: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하는 계산들. 시나리오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거든. 그럴 때마다 ‘미쳤어!’ 하면서 다시 정신을 차리려고 한다. 뭔가를 결정짓고 현장에 나가는 걸 항상 경계한다.

Q. 스무 살의 김우빈과 스물일곱 김우빈이 만난다면 어떤 주제를 두고 얘기하고 싶나.
김우빈:
스물일곱의 김우빈은 스물의 김우빈에게 “날 못 본 걸로 해라”라고 할 것 같다. 미래의 모습을 알게 되면 덜 치열할 것 같고, 덜 용감할 것 같고, 재는 것도 많아질 것 같다. 실제로 스물의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더 용감했고, 더 절실했고, 더 치열했으니까. 그리고 스물의 김우빈이 스물일곱 김우빈에게는…어린 애가 형에게 뭐라고 하겠나! 조용히 있어야지.(일동 웃음).

Q.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용감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얘기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김우빈:
맞다. 가장 큰 행운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상황 상 원치 않을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Q. 뭐가 어린 당신을 치열하게 만들었던 것 같나.
김우빈:
이거(모델)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했다. 부모님이 믿고 응원해 주신 것도 컸다. 만약 그때 부모님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공부나 해” 하셨으면 정말 공부만 했을 거다. 키만 컸지, 그만큼 내성적이었고 평범했다.

Q. 내성적이긴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스스로를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김우빈:
스무 살 때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책을 만났다. 론다 번의 ‘시크릿’이란 책이다. 책을 보면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되고 싶은 것, 그 이상을 상상하라’ ‘의심하지 말라’라는 요지의 글이다. 가령 ‘난 모델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내가 모델이 되면 어떤 일들을 해야지’라는 상상을 하는 거다. 그러면 그 기운이 우주로 가서 거대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긴다고 했다. 교수님 추천으로 보게 된 책인데 읽으면서 굉장히 공감했다. 지금도 늘 그런 긍정적인 상상을 한다.

Q. 지금은 어떤 상상을 하나.
김우빈:
‘좋은 배우가 돼야지’라는 상상을 한다.

Q. ‘좋은 배우’라는 게 추상적이지 않나.
김우빈:
그래서 그 기준을 찾고 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매 작품을 하면서 선배님들을 만나고, 선배님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운다. ‘어떤 걸 배웠어요’ 라고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느끼고 보고 들으면서 깨닫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경험을 통해 기준의 100가지를 찾고 싶고, 100가지 정도를 찾았을 때 어느 정도 좋은 배우가 돼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한다. 매 작품마다 한 두 개씩 배우고 있는데 이제 10작품 했으니까, 100개가 되려면…아휴~

Q. 주요 문화 소비층인 많은 여성들은 당신을 섹시하다고 느낀다. 알고 있나.
김우빈:
하하하. 광고 효과 덕분이지 않나 싶은데. 만들어진, 김우빈.(웃음) 정말 섹시해지고 싶기는 하다. 처음 만난 연기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남자건 여자건 섹시해야 한다”고. “어떤 면에서든” 지금 그 답을 찾는 중이다. 야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섹시한 건 아니니까. 섹시함이라는 게 계산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 섹시함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그냥 묵묵히 가려고 한다.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저기 넓은 바다, 선배들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섹시한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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