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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주차난에 시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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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 건설부동산부 기자) 10년 전 세종시 도시계획을 맡은 전문가들은 ‘신개념 친환경 청정도시’라는 실험적인 콘셉트를 도입했습니다. 당시 자료에는 대중교통 도로와 자전거 도로 386㎞를 건설해 자가용 이용률을 30% 이내로 최소화하고, 도시에 62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인공습지 43만㎡를 조성하는 등 미래형 도시로 만든다고 나와있습니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세종시를 국내외 도시들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모범도시로 조성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한 일간지는 ‘세종시는 21세기 한국 도시 건설의 실험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2015년 현재 세종시는 절반 정도 완성됐습니다. 중간 평가를 한다면 어떨까요? 교통 부분만 놓고 보면 그리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 없는 도시’를 조성한다며 주차장 면적을 줄인 탓에 정부 청사와 주요 상가 주변은 밤 낮 없이 심각한 주차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종시를 방문하는 기업과 연구소 등 외부 관계자들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길거리나 심지어 인도 위에 주차를 합니다. 초기에 불법주차 단속을 했던 청사관리소 측도 어느 순간 단속을 포기했습니다. 절대적인 주차공간 부족으로 하루에 수 백 대의 차량이 불법주차를 하기 때문입니다. 녹지와 공원을 조성한다던 공터는 바닥에 자갈을 깔고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종시 내에선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게 하겠다는 콘셉트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게 세종 시민들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국무총리실 주변 상가의 한 상인은 “차가 없으면 다니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차도는 이렇게 좁고 불편하게 해놓은 것은 누구 머리 속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볼멘 소리를 내뱉더군요. 실제 세종시에서 실시한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세종 시민의 절반 이상(54.8%)이 자가용을 통근·통학용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기자가 거주하는 첫마을 7단지에서 정부청사까지는 걸어서 약 45분인데 버스를 이용할 경우 정류장까지 걷는 시간과 차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50분 가까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 이용도 쉽지 않습니다. 자전거 도로가 완벽하지 않고 교통신호 체계도 아직 완성되지 않아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달 초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중앙부처 공무원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자전거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차량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2013년 기준)’에서도 세종시는 3.02명으로 8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2000년대 중반 세종시 계획이 수립될 당시에도 일부 전문가들이 이 같은 실험적 도시계획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지구상에 없던 그런 도시 구조가 시민들로부터 나온 의견이 아니라,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들의 설계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조금 우려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hiuneal@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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