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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금융위와 금감원의 어색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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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란 증권부 기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사상 처음으로 같은 사무실,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바로 26일 공식 출범한 ‘금융개혁 현장점검반’에서 말입니다. 업권별 4개팀에 금융위, 금감원 직원들 25명이 배정됐습니다.

이번 현장점검반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금융현장의 요청사항을 적극 청취하고 금융개혁 개선과제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조직입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따로 놀면 금융회사들만 힘들어진다’는 임 위원장의 평소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사실 금융회사 입장에선 ‘시어머니’가 둘 인 셈이라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일반 국민들에겐 금융위나 금감원이나 ‘도긴개긴’이지만 말이죠.

금융위는 정부기구인 반면, 금감원은 민간기구입니다. 금융위는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며, 금감원은 금융위가 위임한 감독과 검사, 조사 업무 등을 합니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1998년 협의제 금융감독위원회가 국무회의 산하 위원회로 출범한 게 금융위의 시초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감독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하면서 금감위는 ‘머리’, 금감원은 ‘손과 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금감위가 금융위로 바뀌면서 두 기관은 완전히 분리됐습니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의 겸임이 금지됐으며 금융위는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기능을 가져와 지금의 250여명 조직으로 확대됐습니다. 사무실도 여의도 금감원 빌딩에서 태평로 프레스센터로 옮겨왔고요.

‘한 지붕 두 가족’에서 ‘두 집 살림’으로 바뀌면서 갈등은 첨예해졌습니다. 초대 금융위원장이 부산 행사를 갔을 때 금감원 부산지원장이 의전을 나가지 않았던 사례는 당시 두 기관이 얼마나 자존심 대결을 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후 금융위는 금감원이 가지고 있던 감리위원회, 자본조사심의위원회 조직을 가져왔고, 지난해 마지막 남아있는 제재심의위원회까지도 가져오려다가 금감원의 반발에 부딪혀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KB금융지주 회장과 행장의 징계안을 놓고 두 기관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건 또 어떻고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건 당연지사. 금융회사들은 두 시어머니 눈치를 보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위가 금감원의 구두지도 관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힘을 행사하면서 시장 분위기는 금융위 쪽으로 기울고 있긴 합니다. 그래도 한 증권사 임원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금이야 금융위가 힘이 세지만 언제 바뀔지 모르죠. 그저 두 곳의 눈치를 잘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기관의 직원들을 현장점검반에서 함께 일하게 한 건 새로운 발상입니다.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이날 열린 현장점검반 현판식에서 “금융위과 금감원 공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업계에서도 두 기관이 한 목소리, 한 마음으로 금융개혁 성과를 보여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늘 한 목소리를 내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산업을 키우는 정책을 추진하는 금융위와 금융회사 감독과 검사를 수행하는 금감원의 시각 사이에 상충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단 얘기입니다. 동양사태나 부실 저축은행 같은 사건사고가 또다시 생기지 않도록 감독과 검사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5.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