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의 한 특징을 「글자에 대한 숭배」로 설명할 수 있다고 임어당은 말했지만 글 속에 영혼이나 또는 특별한 영적인 힘이 들어있다는 생각은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항용 느끼고 있는 바다.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써붙여 조상신의 임석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호랑이 호자를 크게 써붙여 그것을 호랑이 그림보다 훨씬 생동감있게 받아들이는 태도들은 결국 누드를 그려 그 여자를 소유하고 현실의 존재로 착각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성기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남근은 더군다나 조각의 영원한 주제가 되어왔던 터였다. 거대한 남근상이든 실물크기로 만들어 외로운 여인들이 이부자리속에서 사용할 만한 사이즈의 것이든 본질에 있어서는 물론 다를 바 없다.
요즘은 말그대로 실용적 목적(?)으로 만든 모조 남근속에 진동장치까지 하거나 괴상한 돌기를 붙여 쾌감의-사실은 순전히 시각적인 것이지만-증대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남근상들이 길거리에 넘쳐나지만 이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던 것이다.
최초의 여성상은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었을까.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빌도르의 비너스는 이같은 해답을 풀기에 적합하다. 그것은 허리와 유방 엉덩이와 아랫배가 모두 잘 발달된 높이 10센티를 겨우 넘는 조그만 조상이다. 잘 발달되었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갈데까지 간 거대한 비계덩어리 비만형 여인이다.
남성의 성기들은 때로는 과장되게 때로는 우스꽝스레 만들어졌지만 기본적으로는 극사실 기법을 유지하는 반면 왜 굳이 여인의 신체는 이처럼 웃기는 비만으로 나타났을까. 둘레의 길이가 높이보다 훨씬 긴 이상한 모양을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관점은 지극히 현대적인 평가임이 분명하다. 구석기 시대인들에게는 풍만함이 아름다움으로 비쳤을 게 분명하다. 케네스 클라크는 누드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지향하는 바를 그린다고 갈파한 바 있다. 구석기의 선배들은 여인의 비계살을 아주 좋아했다는 얘기도 된다. 그것은 부의 상징이요 영양상태의 상징이며 기르는 암말이 살찐 것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독자들께서 혹 필자가 맹목적인 남성우월주의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