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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FTA 협상과 축구의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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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의 중국 이야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한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최근 베이징특파원 출신들의 모임인 베이징방 정기모임에서 들려준 협상 뒷 얘기의 마지막 편입니다. 이야기는 한중FTA협상이 ‘졸속’ ‘깜깜’ ‘반쪽’이라는 비판을 받은 데 대한 우 차관보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식의 해명을 전하는 것으로 풀어가겠습니다.우 차관보의 얘기를 듣고난 뒤 기자에겐 ‘축구의 패스’가 떠올랐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시죠.

우선 ‘졸속 협상’이란 지적에 대해 우 차관보는 “서두른 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중국이 그렇게 원한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전략적인 판단도 작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베이징 정상회의 기간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에 맞춰 실질적 타결선언을 끌어낸 것은 한국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2년 반에 걸친 협상에서 드러난 패턴이 그렇다는 겁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늘 한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공세적인 위치에서 협상을 이끌었다는 겁니다. 한국은 협상에 관건이 되는 구체 사안까지 대통령까지 즉각 보고 해서 대응전략을 짰다고 합니다. 한국산 김치 중국 수출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중국측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구체 사안까지는 제대로 보고를 못하는 지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명확히 밝히지 못해 수세에 몰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상회담이 끝나면 중국이 다시 분풀이라도 하듯 공세로 나서는 협상패턴이 반복됐다고 합니다.

우 차관보는 또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과도 FTA륾 맺은 것은 정부의 중장기 비전 영향이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2003년 8월 당시 외교통상부는 FTA허브 국가란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칠레와의 FTA가 비준을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과 FTA를 시행중인 곳은 한곳도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FTA허브를 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15개 국가 및 지역과 FTA를 체결했고,특히 미국 EU 중국 등 3대 경제체와 모두 FTA를 체결한 곳은 한국 칠레 페루 3곳뿐일 만큼 FTA허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번 한중FTA 협상을 ‘졸속’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깜깜이 협상’이란 비판에 대해선 협상 파트너와의 약속 때문에 공개를 못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하지만 기업들이 대응전략을 짜도록 돕기 위해 해당 협회에 해당 리스트를 지난해 11월 협상 실질적 타결 선언 직후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모든 공산품 양허안은 이번 2월25일 한중FTA 가서명과 함께 공식 홈페이지(www.fta.go.kr)에 공개했습니다. 1077페이지 분량으로 전화번호부 수준으로 방대한 양이라고 합니다.

협상팀은 ‘반쪽 협상’을 했다는 지적도 들어야 했습니다.농산물 보호를 위해서 제조업 시장을 제대로 개방시키지 못했다는 것, 대표적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화학이 개방수혜를 못입게 됐다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농산물 보호가 최대 과제였기 때문에 이를 관철시키는데 주력했다고 우 차관보도 인정했습니다.한미 FTA의 농산물 개방수준은 99%였지만 한중FTA에서는 40% 수준에 머물렀다는 겁니다.그리고 그 40%에 해당하는 품목도 기니아 거위처럼 한국에서는 나지도 들어보지도 잘 못한 품목들 위주라는 겁니다.

농산물 협상에서 한국의 요구가 관철되지 못하면 협상을 중단하기로 중국측이 동의한 덕분에 2012년 협상이 시작됐다는 얘기도 들려줬습니다. 특히 2008년 양국 정상이 FTA 협상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2008년 당시 베이징특파원으로 있던 이날 베이징방 모임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당시 중국과의 FTA는 안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합니다. 농산물 시장 개방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의 공산품 생산기업이 대부분 중국에 진출해있는 상황에서 FTA는 되레 한국에 불리할 것이라는 인식이 당시 정부에 강했었다고 합니다.

석유화학에서 득될 게 없다는 지적에 대해 우 차관보는 길게 봐야 한다는 답으로 설명했습니다.석유화학에선 이미 한국이 중국에 대해 220억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추가 개방을 요구하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그리고 흑자 품목 대부분이 파라자일렌 같은 범용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략을 짠 게 미국의 듀폰이 생산하는 첨단제품과 같은 향후 우리 석유화학업계가 개발 생산해야할 미래 아이템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업계 조사를 통해 삼양사 ,SK케미컬 LG화학 등이 기저귀 원료 등으로 쓰이는 친환경 고흡수성 수지 개발에 나서고있는 점을 감안해 이를 개방품목에 넣고 중국도 수용했다고 합니다.범용 제품을 만드는 롯데케미컬은 불만을 제기했지만 웅진을 인수,도레미케미컬로 변신시켜 친환경 PPS 공장을 짓고 있는 도레이 회장은 직접 전화까지 걸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기자의 머리에 떠오른 게 축구의 패스였습니다. 잘 나가는 축구팀의 패스는 빈공간에 패스를 하지요.자기팀 선수가 달려나갈 그 공간에 말입니다.지금 서 있는 자기팀 선수에 패스하는 건 하수들이라고 합니다.

FTA협상도 그렇지 않나 생각해봤습니다.지난해 11월 한중FTA협상 실질적 타결 선언이 있은 후 지만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에 전화를 돌린 기억이 났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출신으로 금융은 물론 중국의 경제정책 등에 조예가 깊은 그는 “중국은 한국이 그동안 FTA를 맺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 크게 다르다.미국과 EU는 변화가 크지않은 선진국이지만 중국은 아직도 변화가 빠른 국가이다.때문에 협상할 때 그 변화의 흐름을 잘 봐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의 협상에선 정말 한국기업들의 미래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패스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입니다.

LCD와 자동차 중국시장이 개방안됐다는 주장도 LCD는 삼성과 LG가 중국에서 대량생산 체체즐 갖추고,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이미 중국내 생산규모를 확대하는 중이라 설득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 차관보는 산업을 총괄하는 부처에서 통상업무를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나갔습니다.양자간 FTA는 물론 메가 FTA를 하는 경우 원산지 규정이 중요한데 기업의 서플라이체인을 면밀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그 품목의 미래 성장성을 알고 있지 못하면 제대로 된 협상을 하기 힘들다는 주장입니다.

한중FTA협상 과정에서도 한미FTA협상에 참가했던 외교통상부 출신 중 일부는 “왜 그걸 제안하느냐”는 질문에 “한미FTA에서 했으닌까”라는 식으로 답했다고 합니다.한미와 한중간 경쟁과 협력 산업구조가 다른 상황에서 같은 해법으로 대응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지요.

특히 한국이 향후 FTA를 맺는 국가는 선진국보다는 개도국이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됩니다.우리가 빼앗길 게 더 많을 수 있다는 겁니다.그럴수록 산업계의 구조와 그 변화를 제대로 읽는 게 중요해보입니다. /중국전문기자 kjoh@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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