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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선진화법, 북한인권법 발목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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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구 정치부 기자) 10년째 국회에서 잠자는 북한인권법 처리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북한인권법 처리에 전향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입니다.

여야 지도부가 4월 임기국회로 처리시기를 못박고 있어 북한인권법의 통과 가능성은 그 어느때보다 높습니다.하지만, 북한인권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려면 국회선진화법이란 ‘허들'부터 뛰어 넘어야 합니다.

올초 북한인권법 처리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국회선진화법(선진화법) 논란이 떠오릅니다. 당시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북한인권법을 ‘안건 신속처리제도’(패스트트랙)로 추진하려고 하자 유기준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반대 주장을 폈습니다. "패스트트랙은 빨리 달리는 KTX철도가 아니라 간이역마다 정차하는 '베리(very)슬로트랙'이다"라는 말과 함께 였습니다. 선진화법의 불합리를 꼬집은 말입니다. 북한인권법 처리 문제를 다룬 것 같지만, 실은 선진화법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이었습니다.

선진화법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황우여 전 대표(새누리당) 체제에서 대대적으로 통과시킨 법입니다. 여당에서는 야당이 선진화법 뒤에 숨어서 번번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며 불만을 터트립니다. 야당도 지난해 12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새해 예산안이 자동상정되면서 정치적 궁지에 내몰린적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효율적인 의사결정시스템인 ‘다수결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내 선진화법 무용론의 핵심입니다.

지난 달 27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과거 분위기에 밀려 통과됐던 '국회선진화법'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면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경험하고 있다”며 선진화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 도대체 선진화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선진화법은 제18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몸싸움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환영받으며 통과됐습니다. 국회의장석과 상임 위원장석 점거금지 의무, 회의장 출입 방해 금지 등이 주요 내용 입니다. 여론도 국회의 ‘변화하는 모습’에 큰 호응을 나타냈습니다. 19대 국회에서 아직까지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의 ‘로텐더홀의 전투’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성과가 나타난 셈입니다.

그런데 여당은 다른 큰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선진화법 중 법안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 패스트트랙 등 제도가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법 시행 이후 단 한 번도 활용된 적이 없습니다. 패스트트랙은 일정기간이 지날 때 마다 법사위, 본회의 자동 상정을 의무화하고 있어 태우기만하면 법안이 무조건 본회의까지 갑니다. 하지만 들어가는 문이 너무 좁습니다. 5분의 3이상 의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른바 ‘중(重)다수결’. 단 한 개의 법안조차 패스트트랙에 타지 못한 이유입니다.

지난 해 ‘세월호 정국’에서 여야가 극도로 대립하자 문제는 더 두드러졌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들이 줄줄이 국회에서 막혔지만 선진화법은 사실상 마비 상태였습니다. 급기야 새누리당 ‘국회법 정상화’ TF(위원장 주호영)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새누리당이 법을 통과시킬 당시에는 19대 국회에서 5분의 3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쪽수’의 여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그런 여당을 제어하는 위치의) 야당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결국 지금 새누리당은 절반을 조금 넘는 ‘쪽수’를 가졌을 뿐이라는 겁니다.

결국 여당은 올해 초 본격적으로 선진화법 수술에 나섰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0년째 처리되지 않고 있는 북한인권법을 선진화법과 함께 문제 삼았고, 유 전 위원장은 “북한인권법의 장애물=국회 선진화법”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선진화법 개정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패스트트랙 논란이 있은 지 열흘만인 지난 1월 30일, 새누리당은 헌법재판소에 “선진화법이 국회의원들의 심의·의결권을 침해했다”며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권한쟁의 심판의 특성상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했지만, 청구이유에서는 선진화법이 정하는 ‘중다수결’ 요건이 헌법상 일반 다수결 원칙(재적과반수 출석과 출석과반수 찬성)에 반해 위헌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권한쟁의심판이 청구된 날, 야당 한 의원실 보좌관은 “스스로 위헌법률을 만든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국회 의사결정 구조를 그때 그때 ‘쪽수’에 따라 유리하게 바꾸려는 정치적 ‘꼼수’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유가 ‘쪽수’이든 ‘꼼수’이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바라며 기대했던 선진화법에는 이미 ‘후진’ 기어가 들어가 있습니다./pmgj@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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