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이수영의 뮤직비디오 ‘아이 빌리브'(I believe)로 데뷔, 2002년 SBS 시트콤 ‘오렌지’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로 접어든 그는 가파른 상승곡선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이제는 성숙미가 풍기는 여배우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KBS2 ‘왕의 얼굴’로 첫 사극 도전을 무사히 마친 그에게서는 특유의 귀여운 미소와 함께 안도감이 읽힌다. 또박 또박 힘주어 말하는 모습에서는 조용하지만 당차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 영민함도 엿보인다.
Q. ‘왕의 얼굴’이 데뷔 12년 만에 첫 사극이었다.
조윤희: 어려웠지만 그만큼 재밌었다. 데뷔한 지 오래됐지만 사극이 처음이라 두려움이 있었는데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또래 배우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좋았던 것도 있다. 함께 의지하면서 배워간 것 같다. 5~6개월을 함께 추위를 이겨내며 지내다보니 마지막엔 아쉬움이 크더라.
Q. 극중 김가희(조윤희)가 선조를 죽이기 위해 함께 독차를 마신 후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목소리를 잃은 결말은 애처로움을 자아냈다.
조윤희: 비극적이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바라던 대로 광해를 왕위에 올리고 죽지 않고 살았고, 선조에 대한 속죄의식을 평생 지니고 사는 게 가희에게는 최선이자 해피엔딩이었을 것 같다.
Q. 실제로도 순정파인가?
조윤희: 음 그런 것 같다(웃음)
Q. 보이시하면서 여성스러운 매력이 조윤희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이번 사극에서도 있었다.
조윤희: 감독님에게서 깊이 있고 어른스럽고 차분하게 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좀더 단단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들었고. 스스로도 그런 캐릭터를 굉장히 좋아해서 남장을 한다고 했을 때 설렜다. 액션 연기 도전도 새로웠고.
Q. 사극은 특유의 말투를 비롯해서 준비가 많이 필요한 장르인데 어떤 준비가 있었나
조윤희: 승마와 액션을 따로 배웠고, 사극 말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보니 무척 편한 톤이더다. 안 쓰던 말투라 어색할 뿐 오히려 나중에는 더 좋았다. 액션도 워낙 안해본 걸 해보다 보니 부딪치고 까이는 상처는 있었지만 크게 다치진 않았다. 액션신 찍고 모니터 해 보면 정말 멋있더라. 나중에는 더 멋있게 비중있는 역할도 하고 싶다.
Q. 서인국은 어떤 파트너였나?
조윤희: 인국이는 정말 상대방을 너무나 편하게 해 주더라. 열심히 하고 잘 하는 배우라 샘이 날 정도로 부럽다. 게다가 점점 잘생겨져가고 있다.(웃음) 흔들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고 자극도 받고 있다. 나와 정말 잘 맞는 친구였고, 어떤 파트너를 만나도 호흡을 잘 맞추는 남자배우일 것 같다.
Q.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때부터 여성스러우면서도 귀엽고 보이시한 매력이 많이 부각됐다.
조윤희: 스스로는 중성적인 매력이 많다고 생각해서 그런 캐릭터를 맡았을 때 편하고 잘할 수 있다. 실제 성격도 굉장히 여성스럽지는 않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예전에는 좀 그랬는데 지금은 좀 센 여자의 느낌이 늘어난 것 같다.(웃음)
Q. 주위 사람들과 있을 땐 어떤 편인가?
조윤희: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배려심 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크다. 근데 정말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얘길 들어보면 좀 센 느낌도 있다로 하더라(웃음) 요즘엔 리더십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 이전에는 늘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었다면 요즘엔 자기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커리어 우먼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점점 기가 세 지는 것 같기도 하고.
Q. 그렇게 스스로 변화해야 겠다고 느낀 계기가 있었나?
조윤희: 30대에 접어들고,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아지면서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20대까지는 남의 눈에 띄는 걸 싫어하고 항상 숨어다녔다. 사람들의 주목 받는 게 쑥스럽고 창피했다. 어릴 적 꿈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지금은 좀 달라졌다.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는 폭도 점점 넓어지더라. 예전엔 캐릭터를 얘기해도 내 의견이 거의 없고 정형화된 생각밖에 못했는데 나이가 점점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캐릭터에 대한 생각의 차원이 커지고 연기에도 도움이 되더라.
Q. 3년간 쉬지 않고 계속 작품을 하고 있다.
조윤희: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를 생각해주셔서 캐스팅 제의를 하시면 다 하고 싶다. 어떤 배우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이 안 들어오는 분들도 있을 거고, 나 또한 그런 시기가 있었다. 앞으로는 쉴 새 없이 일해야지.(웃음)
Q.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나보다.
조윤희: 연기가 재밌다고 느꼈던 건 30대부터다. 이전엔 어렵고 불편하고 나와 안 맞다고 생각해서 주눅들고 자신이 없었다. 딴 걸 해볼까 했는데 마땅히 결혼 말고는 할 게 없는데 그건 싫더라. 내가 재주가 많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다면 아마 힘들어서 그만 뒀을 거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다른 걸 그다지 잘하는 게 없었다. 꾸준히 버티다보니 내게 좋은 기회가 왔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와서 기쁘다.
Q. 연애할 때의 조윤희는 어떤 스타일인가?
조윤희: 나는 눈치도 없고 곰 같다. 다행히 점점 여우가 돼 가는 것 같긴 하다. 정말 곰탱이였는데. 이전엔 누가 날 좋아한다고 해도 자신도 없고 눈치도 없었다 . 좋아해도 고백도, 표현도 잘 못했다. 지금은 분위기 봐서 좋아한다고 표현도 하고, 누군가 내게 관심이 있다는 촉이 오면 대시하도록 마음도 열고 그런다.(웃음) 몰래 몰래 조용히 연애도 하고 그래야 연기할 때도 감정이 나오는 것 같다.
Q. 특별히 좋아하는 이상형이 있나?
조윤희: 배려심 많고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남자다운 자신감도 있어야 하지만 심성이 고운 사람이어야 존경할 수 있을 것 같다.
Q. 해외 쪽 작품에도 관심이 있나?
조윤희: 꼭 해보고 싶다. 요즘 중국 드라마도 많이 하는데, 가서 고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외국 스태프들과 한번 작업해보고 싶고, 다른 시스템도 경험해보고 싶은 열망이 크다.
Q. 예능은 어떤가?
조윤희: 언젠가 한번 토크쇼에 나갔었는데 나를 너무 센 캐릭터로 보시는 분들도 있어서 약간 조심스럽긴 하다.(웃음) 근데 몸으로 뛰는 건 자신 있고 욕심 난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보고 싶다.
Q. 강아지 여덟 마리를 키우는 ‘강아지 엄마’로도 유명하다.
조윤희: 버려졌던 불쌍한 강아지들인데 우리집에서 행복하게 지낸다. 내가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도와주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보람이다. 주위에서 강아지에만 빠져서 연애도 안 한다고 걱정하시는데 그렇진 않다. 다만 내 삶의 일부분은 동물에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다. 강아지때문에 결혼을 안 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결코 아니니까. 동물을 키우면서 감정이 깊어지는 순간을 많이 느낀다. 제일 슬플 때가 애완동물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들이다.
Q. 올해로 벌써 데뷔 14년차다.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장르도 있을 것 같다.
조윤희: 최근 들어 스스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뿌듯할 때가 많다. 최근작에서 사연 있는 캐릭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제는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다. 앞서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tvN ‘나인’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 더 성장했으니 밝고 재밌게 해 보고 싶다. 30대의 귀여움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Q. 아 차기작(영화 ‘조선마술사’)은 유승호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조윤희: 극중에서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유승호를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다. 청춘 멜로 로맨스인데 내 이야기 부분은 약간 어둡긴 하다. 시각장애를 지닌 기생인데 정말 매력적이다. (끝)
사진. 구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