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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리 토끼 좇는 박삼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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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욱 증권부 기자) “회장님이 과한 욕심을 내는 것 같습니다. 부메랑이 돼서 역효과를 낼 까 걱정입니다. ”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가 사석에서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회장님은 박삼구 그룹 회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박 회장이 그룹 모태인 금호고속과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을 동시에 인수하려는 노력들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 않다”는 게 자본시장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입니다.

사실이 어찌됐든 투자은행(IB)업계 전문가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금호고속 매각 과정에 대해 “금호그룹 측이 방해 작업을 했다”고 인식합니다. 사모펀드(PEF)와 같은 잠재적 인수 후보자들과 이를 지원한 시중은행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인수 포기 압력을 넣었을 뿐 아니라 입찰에 참여한 후보자들에게 실사 자료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지분 100%를 보유한 IBK투자증권-케이스톤 파트너스가 선임한 신임 대표가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도 막고 있습니다. 금호고속 매각 협상 대표를 우리사주조합장에 위임한 공문에 대해서는 “한국 대기업 역사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코미디”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불과 며칠 전 길거리에서 회사 매각 반대를 외쳤던 부장급 직원에게 5000억원이 넘는 대형 인수·합병(M&A) 협상을 맡긴 것입니다.

부작용은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형 사모펀드(PEF) 대표는 “박삼구 회장이 괘씸해서라도 금호산업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자신의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임직원들을 불합리하게 동원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입니다. 채권단 관계자는 “박 회장에게 금호그룹 경영권을 위임한 게 결과적으로 회사 매각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회장측은 지분 10.7%를 보유한 주요 주주지만, 지분 57%를 보유한 채권단으로부터 경영권을 위임받아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M&A 협상에서 매각 대상 경영자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글로벌 PEF들이 회사가 성공적으로 매각될 경우 해당 기업 CEO에게 수백억, 수천억원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금호그룹의 경우 채권단이 회사의 매각가치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은 CEO에게 경영권을 맡겼다고 걱정할 여지가 있습니다. 박 회장으로서는 금호산업을 가급적 싼값에 인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박삼구 회장이 국내 30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금호산업 인수전에 불참할 것을 호소하는 것도 보기에 따라 대주주들에게는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 M&A에 대해 “여론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3000억원 이상 털었다”며 “부정한 다른 사주들과 달리 실패에서 재기해 모기업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채권단이 대규모 빚을 탕감해주면서도 구사주인 박삼구 회장에게 우선매수권까지 부여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론은 상황에 따라 쉽게 움직이는 변수입니다. 명분이 옳더라도 수단이 바르지 않다면 결정적인 순간 여론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