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선박 이야기③선박 진수식 때 도끼질, 왜?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김보라 산업부 기자) “딸 시집 보내는 기분 같기도 하고 그래요. 출항하면 저 멀리 안 보일 때까지 그냥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지. 말로 설명은 못해. 그냥 매번 배 띄워 보낼 때마다 그래.”

얼마 전 거제의 한 조선소에서 20년 넘게 일한 분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 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소가 주로 만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운반선은 배를 기울여 세우면 그 높이가 63빌딩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 큰 배를 3년간 어디 한 곳 녹슬 데 없는 지, 물 새는 틈은 없는 지, 밤낮으로 돌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다로 내보내려면 그렇게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하다고 했습니다.

배를 애지중지 아끼는 자식처럼 여기는 건 조선소 사람들의 아주 오래된, 공통의 마음인가 봅니다. 선박에 이름을 짓는 ‘명명식’에 이어 배를 뭍에서 물로 보내는 ‘진수식’의 하이라이트 때도 이런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진수식의 마지막에는 주빈(통상 여성)이 선박과 명명식장 간 연결된 밧줄을 도끼로 절단합니다. 보통 이같은 행사에서 가위로 테이프를 자르는 기념식을 하는 것과 비슷한데요. 선박 진수식에서는 금도끼로 내려치는 순간 폭죽이 터지면서 화려한 볼거리가 시작됩니다. 금도끼가 밧줄을 끊으면 배는 첫 고동을 울리게 되는데요. 과거 바이킹들이 만든 선박을 진수할 때 연결줄을 도끼로 끊은 것이 유래라는 설도 있지만, 아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연결된 탯줄을 자르는 의미라는 설이 더 유력 합니다. 지금도 울산 현대중공업에는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첫 건조식을 치를 때 사용한 도끼가 기념으로 보관돼 있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조선소에서는 쇠에다 순금을 입힌 금도끼를 명명식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금도끼에는 선주사 이름, 선명, 명명자, 건조회사, 명명식 날짜가 상세히 기록되고 명명식 후 이를 스폰서에게 기념품으로 주는 행사도 갖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명명식에 참여한 여성이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선박에 샴페인병을 던져 깨트리는 풍습도 있습니다.

이 풍습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영국에서는 17세기 들어 해군의 군함을 진수할 때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성배를 배에 던져 깨지게 했다고 합니다. 안전과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는데요. 이후 군함 건조가 많아지자 귀한 성배를 깨뜨리는 게 옳지 않다고 여긴 윌리엄 3세 왕이 “성배 대신 와인을 한 병씩 깨뜨려라”고 칙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런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는데 요즘은 병 안에 압력이 높아 잘 깨지고 거품도 잘 나는 샴페인을 주로 사용한다고 하네요. 샴페인 병이 한번에 시원하게 깨지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기기 때문에 조선소 관계자들은 자나깨나 병이 잘 깨지길 기원한다고 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2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