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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과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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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이태명 기자)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은 2013년 10월에 완공됐습니다. 50층 짜리 초고층 빌딩이죠.

완공 이후 한동안 전경련 직원들과 처음부터 입주한 LG CNS 직원들만 오가던 이 빌딩에 최근 사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한화건설과 도레이첨단소재 등 다른 대기업들이 속속 입주하면서부터입니다. 이전까지 한가했던 엘리베이터도 지금은 아침마다 혼잡스럽습니다.

그런데 새 입주사들이 최종 계약을 하기 전에 한번쯤 확인하는 게 있다고 합니다. 바로 47층에 있는 전경련 허창수 회장의 집무실 위치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전경련 빌딩은 북쪽으로는 국회의사당, 동쪽으로는 한강, 서쪽은 영등포로터리, 남쪽은 여의도 광장아파트와 마주해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전망 또는 뷰(view)’는 북쪽과 동쪽이 낫습니다. 높은 빌딩이 없어 시야가 확 트인데다 멀리 한강까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허 회장 집무실도 동쪽이나 북쪽에 위치해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남서쪽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광장아파트와 영등포로터리가 보이는 모서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왜 ‘뷰’가 좋지 않은 남서쪽에 회장 집무실이 있을까요? 이에 대해 전경련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리 배치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서쪽에서 재화가 들어온다는 풍수지리에 따라 이곳에 회장 집무실을 배치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풍수지리상 북쪽과 동쪽보다는 남쪽과 서쪽 모서리 방면이 가장 ‘좋은 터’라는 겁니다. 그래서 입주사들 중에는 전경련 회장 집무실 방향에 회사 CEO 집무실을 두는 곳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 기업들에 있어 풍수지리는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외부에는 알리지 않지만 사옥을 짓거나 회장 및 CEO 집무실을 정할 때 풍수지리를 따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삼성그룹 서울 서초사옥이죠. 삼성그룹은 원래 서울 남대문 근처 태평로에 그룹 사옥을 뒀습니다. 그룹 사옥을 지금의 서초동으로 옮긴 건 2009년입니다. 초창기 삼성그룹이 서초동으로 사옥을 이전한다고 했을 때 ‘왜 그렇게 복잡하고 교통도 불편한 곳으로 옮길까’하고 의구심을 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강남4거리에 위치한 삼성그룹 서초사옥은 ‘명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쪽, 서쪽, 남쪽의 지대가 높고 북쪽만 낮은 데다 북쪽에는 멀리 한강이 자리잡고 있는 지형이라고 합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죠. 결과적으로 삼성은 서초사옥으로 이전한 뒤 글로벌 IT기업으로 고속성장합니다. ‘명당’ 덕을 톡톡히 봤다는 얘기가 나올 법합니다.

풍수지리와 관련한 ‘전설’과 같은 얘기도 있습니다. 경북 의령의 ‘솥바위 전설’이죠. 이 일대에선 언젠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솥바위 주변 20리엔 부귀가 끊이질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고 합니다. 솥바위의 모양이 부귀를 뭉쳐놓은 것처럼 생겼다는 겁니다. 전설이 맞은 걸까요. 경북 의령 솥바위 인근에서 삼성그룹과 금성그룹(현 LG그룹), 효성그룹이 모두 생겨났습니다. 물론 이병철 삼성 창업주, 구인회 LG창업주, 조홍제 효성 창업주가 지근거리에 살았고 이들의 집안이 당시 부유했기 때문에 전설과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기는 합니다.

한편 ‘터가 좋지 않아 기업이 망한다’고 한동안 회자됐던 곳도 있습니다. 서울 용산역에서 한강대교로 가는 대로변에 있던 모 빌딩입니다. 1980년대 이후 이 빌딩을 사옥으로 썼던 회사들 중 상당수가 경영난으로 망하면서 재계에선 한동안 이 빌딩이 기피 1순위로 꼽혔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풍수지리가 기업의 흥망성쇠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역술가 등 전문가들이 보기에 좋지 않은 터에서 잘 나가는 기업도 많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풍수지리보다 CEO의 판단착오,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 등이 더 큰 변수일 겁니다. 2015년 새해 우리 기업들 경영여건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우리 기업들이 ‘풍수지리’ 덕을 봐서라도 좋은 실적을 내기를 기대해봅니다. /chihiro@hankyung.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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