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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남아공 번지점프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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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자락.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비행기 직항편이 없고 2~3번은 갈아타며 하루를 꼬박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입니다.

남아공에는 높이 216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번지점프가 있습니다. 남아공 최대 도시 케이프타운에서 동쪽으로 약 500㎞ 떨어진 곳에 있는 ‘브로클란 다리(Bloukrans Bridge)’의 번지점프입니다. 산악지역 중간에 깊이 파인 계곡이 있고 그 계곡을 가로질러서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 중간에 번지점프 시설을 만들어 놨습니다.

기자가 지난달 이곳을 다녀왔습니다. 직접 뛸 때 뿐만 아니라 가는 길도 박진감 넘치는(?) 재밌는 여정이었습니다. 한경+판 ‘여행의 향기’(한국경제신문의 월요일자 여행 섹션)를 펼쳐보겠습니다.

말씀드렸듯 한국에서는 보통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 남아공에 갈 수 있습니다. 먼저 홍콩이나 두바이처럼 한국과 남아공 중간 쯤에 있는 도시에서 한번 갈아탑니다. 남아공으로 가는 대부분의 국제선이 남아공 북동쪽에 있는 도시 요하네스버그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요하네스버그에서 내려서 다시 남아공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저는 남아공 국내선을 타고 다시 남서쪽에 있는 도시 케이프타운으로 갔습니다. 케이프타운으로 가지 않고 브루클란 다리에 더 가까운 도시 ‘포트 엘리자베스’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이라고 해서 브루클란 다리와 매우 가까운 것도 아니고 도시 크기도 매우 작아 전 이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육로 여행입니다. 케이프타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다시 9시간을 가야합니다. 목적지는 ‘스톰스 리버’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마을 인근에 브로클란 다리가 있습니다. 장거리 버스를 아침에 타서 늦은 오후에 도착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저는 늦은 오후에 타서 새벽에 도착하는 편을 탔습니다. 어둑해질 때쯤 버스에 올라 검은 대륙의 들판을 한참 달렸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드디어 도착. 그런데 마을이 아니라 초원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주유소에 내려주더군요.

내려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께. 주유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마을은 여기서 5㎞ 떨어진 곳에 있다는군요. 깜짝 놀라 “내가 잘못 내린 거냐”니까 “원래 이 주유소를 스톰스 리버 정류장으로 쓴다”고 하네요. 주유소 직원은 “마을까지는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걸어서 가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마을까지 가려면 숲에 외길로 나있는 도로를 지나야하는데 날이 어두울 때는 야생동물이 나타날 수 있어 위험합니다. 할 수 없이 주유소에서 책도 읽고 직원들과 수다도 떨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날이 밝은 뒤 도로를 터벅터벅 걸어서 스톰스 리버까지 갔습니다. 스톰스 리버는 마을에 있는 상점이 10개도 안되는 작은 곳입니다. 하지만 인근에 레저를 즐길 게 많아 관광객이 많이 오기 때문에 리조트도 몇개 있습니다. 이 리조트들은 대부분 브로클란 다리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합니다. 스톰스 리버에서 브로클란 다리까지는 20㎞가 넘어 걸어가기는 어렵습니다. 한 리조트에 들러 셔틀버스를 예약하고 아침을 먹은 뒤 드디어 번지점프 하는 장소까지 갔습니다.

브로클란 다리의 번지점프 장소에 도착하니 ‘Face Adrenalin’(아드레날린에 직면하라)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 번지점프를 운영하는 남아공 민간 회사의 이름입니다. ‘Fear is temporary, regret is permanent’(공포는 순간이지만 후회는 영원하다)라는 익살맞은 문구도 보입니다. 한번 점프를 뛰는데 가격은 850랜드(우리돈 약 8만원)입니다. 돈을 내고 등록을 하니 직원이 매직으로 제 손등에 뭔가를 적습니다. ‘66 / J33 / 10:00.’ 66은 제 몸무게고, J33은 오늘 서른 세 번째로 뛰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10:00은 뛰는 시간이 오전 10시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뛰는 걸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제 차례가 왔습니다. 번지점프 등록을 받는 곳은 계곡의 한쪽 건너편에 있고 번지점프 하는 곳은 브로클란 다리의 중간에 있습니다. 다리 위쪽으로는 차만 올라갈 수 있고(강풍 때문에 다리 위를 걸어서 지나가는 게 법령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다리 아래에 철근 구조물로 따로 만들어놨습니다. 길의 바닥을 철망으로 만들어놔서 까마득한 계곡 아래를 보면서 걸어야 합니다.

드디어 다리 중간의 번지점프 장소까지 도착했습니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고 쿵쾅거리는 음악을 트는 DJ도 있습니다. 시끄러운 음악을 트는 이유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없애주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앞서 번호를 받은 몇명을 보낸 뒤 드디어 제 차례가 됐습니다. 정해진 의자에 앉으니 직원들이 다리에 줄을 묶어줍니다. 전 이때부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무서워서 못 뛸 것 같았거든요.

드디어 선수 입장. 두 다리가 묶여 있어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어깨동무로 매달려 두발로 뛰면서 점프 뛰는 지점까지 갔습니다. 도착해서 다리 끝에 발가락을 걸치고 섰습니다. 이제 한걸음만 내딛으면 까마득한 계곡입니다. 아무리 진정하려고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양쪽에서 절 붙잡고 있던 직원들이 난데없이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5, 4, 3, 2, 1, 점프!

다리로 힘껏 바닥을 찼습니다. 허공으로 몸이 날아갑니다. 주위를 보니 거대한 계곡과 거대한 바위, 아프리카의 대자연 속에서 제 몸이 홀로 날고 있습니다. 그 순간 짜릿한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더군요. 이내 까마득한 계곡으로 몸이 빨려들듯 떨어집니다. 아래를 보니 바다로 흘러가는 계곡물이 무서운 속도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잠시 뒤 다리 쪽에서 뭔가 당기는 느낌이 들더니 몸이 허공에 멈췄다가 다시 튕겨져 올라갑니다. 그렇게 다섯 차례 정도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 뒤 번지점프가 끝났습니다.

가는 길이 멀기는 하지만 한번쯤 해볼만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휴가 때는 남아공으로 가서 이 번지점프를 해보시는 건 어떨지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5.1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