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설연휴 볼만한 공연/전시 ②연극 ‘해롤드&모드’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송태형 문화스포츠부 기자)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해롤드 & 모드’는 1971년 말 개봉한 동명 영화(Harold and Maude)에서 출발했습니다. 미국 개봉 당시 영화는 한마디로 망했습니다. 흥행에 참패했죠. 이후 대학 캠퍼스나 변두리 소극장 등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소수 집단이 광적으로 숭배한다는 이른바 ‘컬트 영화’가 됐습니다. 영화를 보면 19세 청년 해롤드의 핏빛 가득한 자살놀이나 해롤드와 80세 할머니 모드의 진한 키스신 등은 다수 대중에게 외면받고 소수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낸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쓴 콜린 히긴스는 개봉 직후 같은 내용으로 희곡을 써서 발표합니다. 양정웅 극단 여행자 대표가 이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은 컬트적이지 않습니다. 다수 대중이 지지할 만한 무대입니다. 컬트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불쾌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죠. 엄마의 말대로 ‘결혼할 나이’가 됐으나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해롤드와 곧 80회 생일을 맞는 자유분방한 모드가 만나 깊은 우정을 쌓다가 사랑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유쾌하게 그립니다.

연극이 개막 26일만에 관객 1만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해롤드 역을 맡은 강하늘의 인기와 모드 역 박정자의 명연 덕분이기도 하지만, 영화와는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고 환하고 긍정적인 이유도 큽니다.

시공간적 배경이 극 중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68혁명’이나 히피로 대표되는 1960년대 서구 젊은이들의 저항 문화와 생명존중 운동의 정신이 표출됩니다. 당시 ‘청년 문화’가 내건 정신을 체화(體化)하고, 설파하고, 실천하는 인물은 19세 해롤드가 아닌 80세 모드인 점이 재미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논란을 일으켰던 19세 남자와 80세 여자의 ‘사랑’은 적당한 선에서 멈춥니다. 다소 싱겁게 느껴질 법도 합니다. 방황하던 젊은이가 현명한 노인을 만나 주체적인 삶의 의미와 자세를 배우고 깨닫는 성장 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모드 역을 맡은 ‘한국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동양 현자 같은 모습도 그런 느낌을 줍니다. 효율적인 공간 분할과 영상 및 조명의 활용으로 장면을 매끄럽게 이어가고 분위기를 연출하는 솜씨도 돋보입니다. 오는 3월1일까지, 3만~6만원. 평일 공연 시간은 오후 8시이지만 연휴기간인 18~20일에는 오후 3시(평일엔 오후 8시)부터 공연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