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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 푹 빠진 통상관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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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김재후 기자) “Let`s look, if we are on the same page.”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의 산업,통상,자원(에너지) 정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 중 작년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통상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죠. 통상 부문엔 FTA 협상에 나서는 공무원들이 모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상 관료’라고 합니다.

이 통상 관료들은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미드(미국 드라마)’에 빠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좀비물인 ‘워킹데드’보다는 ‘웨스트윙’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 등 미국 백악관과 의회 얘기가 나오는 것과 ‘굿 와이프’ ‘보스턴리갈’ ‘슈트’ 등 법정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이유가 있어요. 재미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네요. 미드는 작가가 수개월에서 수년씩 해당 분야를 취재한 뒤 해당 분야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걸 FTA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보스턴리갈’의 한 에피소드에선 미국 광우병에 대한 소송이 주제로 나오는데, 그 때 변호사와 정부 측은 학술적이다 싶을 정도로 치열한 법리 논쟁을 이어갑니다. 한미FTA 협상 전에 방영한 에피소드인데 이 논리를 실제 한미FTA에 인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통상 관료는 “미국에서 미국인들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며 효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또 “한국어로는 논리가 되는데, 영어로는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고민이었는데 미드 대사를 참고하면 좋았다”고 하더군요.

고급 영어가 나오는 것도 이들 미드의 인기 요인입니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주부가 남편이 일리노이주지사로 출마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굿와이프’가 특히 그러하다고 합니다. 기사 제일 첫 도입에 쓴 “Let`s look, if we are on the same page.”라는 문구를 통상 관료는 고급 영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습니다. 흔히 FTA 협상은 수 십차례씩 이어가는데, 직전 회의에서 어디까지 협의를 했는지 협상 시작 때 말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저 대사가 딱 그런 상황에 쓰인다네요. “우리가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는지 어디 한번 봅시다.”라고 직역이 되는데, 의역하면 “우리가 (오늘 협상에 들어갈 주제에 대해) 같은 입장인지 한번 봅시다.” 결국 “자 오늘도 협상을 시작해봅시다.”정도의 말이 된다네요.

그래서 통상 관료들은 미드에 빠졌답니다. 통상용어가 한국어였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영어가 국제어다보니 생기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 통상 관료들은 미드를 전부 자막없이 본다고 합니다. 영문 자막으로도 안 본다네요. 당연한(?) 얘기인가요.(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