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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사전검증절차인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가 사라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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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구 정치부 기자) 이완구 국무총리후보자의 국회 인준을 놓고 여야가 또 다시 대립했습니다. 파행이 가져올 정치적 부담때문에 여야는 가까스로 인준안을 표결로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야당은 소속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권고했습니다.

청와대가 이 후보자를 총리에 발탁한 배경에는 청문회가 일사천리로 통과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여당 원내대표출신인 국회의원에 대한 인사검증은 ‘통과의례’성격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막상 시작하니 부동산투기,군대면제,논문표절에 이어 언론관까지 국무총리 자질을 의심케하는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안대희 문창극 후보가 중도 낙마한데 이어 무결점 총리후보로 꼽혔던 이완구 의원까지 국회 인준안 통과를 놓고 여야가 격돌하면서 청와대 인력풀(pool)및 사전검증시스템이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문 대표도 “청와대가 도대체 무엇을 검증했는지 검증하기는 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론조사 논란과 별개로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청와대에서 후보자의 도덕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문제되었다는 ‘팩트’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후보자 본인과 아들의 병역면제 등에 대한 의혹, 경기도 성남 부동산과 타워팰리스 등 부동산 투기 의혹, 고액소득자인 둘째 아들의 건강보험료 미납과 부동산 증여, 학위 논문표절 의혹 등은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되는 ‘단골 메뉴’들의 집합과도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한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후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부동산 투기와 두 아들의 병역 면제 등의 의혹,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논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역사관 문제로 자진 사퇴했습니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등 의혹,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도 논문표절 등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제되어 낙마했습니다.

공직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도덕성 검증자체에 의문을 표시할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박근혜 정부들어 후보자 사전검증이 생략되거나 제대로 이뤄지 않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은 국무위원 후보에 대해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작성을 통해 사전검증을 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질문서는 가족관계(9), 병역의무이행(14), 전과 및 징계(20), 재산형성 등(40), 납세 등 각종 금전납부의무(26), 학력 및 경력(12), 연구윤리(15), 직무윤리 관련(33), 개인사생활 관련(31)까지 모두 200개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질문이 있는 재산형성에 대해서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농지 또는 임야 취득 여부, 경위, 시기, 경작, 위탁경영 사실부터 미성년 또는 무소득 자녀 명의의 부동산, 주식, 고액 예금 보유 현황까지 전 가족의 재산 보유 및 거래상황을 묻습니다. “최근 5년간 본인과 배우자의 신용카드 연 사용총액이 총 소득의 50%를 넘거나 특정 월 사용액이 소득을 초과 사용된 적이 있는지” 까지 세세한 질문도 있습니다.

병역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본인 또는 자녀 중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자녀가 군복무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재신검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등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자녀가 공익근무요원 혹은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 경우 근무지 배정 등을 위해 주소를 옮긴 경험이 있습니까?” 등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묻습니다.

납세 등 각종 금전납부의무 항목에서는 임대소득 신고여부, 사업(법인포함) 영업 사실, 사업자 등록 여부, 상속증여 및 관련 세금 납부부터 “본인 또는 자녀가 소득이 있으면서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피부양자로 등재한 적 있습니까?”, “소득이 있는 배우자, 직계존비속을 연말 소득공제시 인적공제 대상에 포함시킨 적이 있습니까?” 등의 세부적인 질문이 들어있습니다

기자가 스스로를 검증해보아도 엄격한 잣대의 질문들입니다. 이 질문서만 통과해도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문제가 거론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사실 질문 자체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료요구하거나 질의하는 내용들을 문제은행식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서가 지난해 8월부터는 작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이 질문서의 답변 내용이 문제된후 야당의 공격이 청와대로 향하게 되자 아예 생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사청문제도가 잘 정착된 미국의 경우에는 후보자가 백악관에 개인정보진술서(Personal Data Statement), 국가안보 직위를 위한 질문서(Questionnaire for National Security Position), 정부윤리처의 개인자산공개보고서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됩니다. 또 의도적으로 허위진술을 한 경우 연방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는 항목에 서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질문서의 내용은 24시간 이내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고 필요한 경우 인터뷰까지 실시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대통령법률고문실 감독 하에 연방수사기관(FBI)과 관세청이 함께 합니다. 그리고 질문서와 FBI 등의 조사결과는 인사청문회를 하기 전 단계로 상임위원회의 예비조사에서 보내지고 일반에게도 공개됩니다.

국회에서 자료요구를 해도 질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던 우리와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도덕성을 충분히 검증했다면 숨길 것도 없는 문서이고 당연히 공개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질문서를 통해 충분한 검증을 하다 보니,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가 지닌 가치관과 정책에 대한 심층적인 검증이 가능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후보자가 그 자리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다 깊이 있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인사청문회는 여전히 후보자의 도덕성 ‘정치공세’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이번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로서의 리더십과 정부 정책에 대한 검증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청와대의 사라진 질문지 때문일까요?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가 사전에 검증된 후보를 지명하고 국회에서는 정책검증이 이뤄지는 인사청문제도로 개선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인사청문회와 의회민주주의의 위상을 세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9.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