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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찾아 서울로, 지방 취준생들의 치열한 상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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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희 한경 잡앤조이 기자) “나 서울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지방 친구들의 모임인 ‘부산팸’ 중 한 명이 대뜸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외쳤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몇 달 전부터 취업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열심히 학원도 다니고 면접도 보러 다닌 끝에 드디어 한 대기업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곧 한 달 뒤 또 다른 친구도 서울의 제약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부산팸 셋 중 두 명이 서울에서 취업을 한 것이다.

꽤나 충격적이었다. 둘은 모두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모태 경남女’였다. 특히 이 중 한 명은 서울소재의 한 중위권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일절 갈등 없이 고향을 택했을 정도다.
하지만 취업을 앞두고선 모두 서울행을 티켓을 끊었다. 부산에서는 도저히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SCENE 1. 일자리 찾으러 서울로, 서울로

# 대구 동성로의 한 호프집, 밤

번화한 동서로의 한 호프집에서 5명의 대학생이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중 선배로 보이는 2명이 다른 학생들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경상남도 대구의 영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장혜정(가명)씨도 모태 대구인이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모두 대구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14년 12월, 오랜 고민 끝에 서울에 왔다. 역시 취업을 위해서였다.

“선배들이 취업을 앞두고 ‘대구에 대기업은 대구은행 하나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줄줄이 서울로 올라갔어요. 당시엔 그냥 농담인줄로만 알고 흘려들었죠.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취업할 때가 되니 이제 비로소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고요. 학생들은 대기업을 선호하는데 대구에는 그 수가 워낙 적다보니 이력서를 넣을 수조차 없어요. 그래서 다들 서울로 갔던 거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서울행을 결심하자 장씨는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버스 티켓을 끊기 전, 장씨는 우선 부모님부터 설득해야 했다. 역시 반평생을 대구에서 보내신 부모님은 취업 때문에 딸이 서울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대구의 취업 현실과 ‘서울 학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들으시던 부모님은 마침내 든든한 지원군이 되기로 약속했다. ‘취업’이 온 가족을 움직인 것이다.

장씨처럼 지방대학을 졸업해 수도권에 취업하는 청년층의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4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지방대학 졸업생의 취업 행태 분석’ 자료(2009년 8월과 2010년 2월 4년제 대학 졸업자 기준)에 따르면 지방대학 출신 취업자 중 수도권 소재 기업 취업자는 38.7%였다. 이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05년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에서의 28%에 비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지방대생의 서울 유입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방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나마 제조업 기반 대기업이 많은 대구 경북권과 부산, 울산 등 경남권 외에 다른 지역은 지역 산업기반이 미비해 인력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근로여건도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된다. 지방대학 졸업자 중 지방 중소기업 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178만원으로 수도권 중소기업 취업자의 187만원보다 적었다. 일자리 월평균 소득도 지방대생(198만원)이 수도권 대학 학생의 평균인 230만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SCENE 2. 스펙 쌓는 데도 서울이 유리하더라고요

# 서울 강남의 한 학원, 오후 2시쯤

한 명의 강사가 칠판에 필기하는 내용을 열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바로 옆 강의실에서는 정장 차림을 한 수강생의 발표가 한창이다.

행원과 인사 두 가지 직무를 놓고 고민 중이라는 혜정 씨는 요즘 행원 대비반 사설 학원을 다니면서 틈틈이 인사 관련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있다. 모두 서울에 온 덕분에 참여할 수 있게 된 프로그램이다. 대구에 있을 때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평소에 온라인을 통해서 인터넷 강의는 가끔 들었는데 집중력도 떨어지고 궁금한 점이 있어도 물을 길이 없었어요. 서울에 올라와 직접 학원을 다니니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특히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를 쉽게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정보도 서로 교류하고 있죠.”

풍부해진 네트워크는 뜻밖의 기회도 선물했다. 평소에 동경하던 현업 선배를 실제로 만나게 된 것.

“대구에 있을 때 학교로 한 외국계 기업 인사담당자가 직무 특강을 온 적이 있어요. 내용이 무척 감동적이어서 덕분에 인사맨이라는 꿈을 키우게 됐죠. 강연 후에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도움도 받았어요. 하지만 그 후에 직접 뵙고 싶어도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좀처럼 기회가 안 닿는 거예요. 너무 속상했죠. 그러다 서울에 오고 나서 인사 관련 세미나에서 그 분을 다시 뵈었어요. 정말 기뻤죠.”

강원도 소재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김홍경 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단기간에 토익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딱 한 달 동안만 서울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곧장 인터넷으로 봐뒀던 대형 토익학원의 ‘토익 900점 한 달 속성반’을 신청했다. 수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 자취에 비해 고시원은 일 또는 월 단위로 계속 계약을 갱신할 수 있기 때문에 김씨가 진작부터 염두에 둔 곳이기도 했다.

“물론 강원도에도 토익학원들이 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서울은 토익학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잘 가르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딱 한 달만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원하는 점수를 따서 돌아오자고 결심했죠. 서울의 커리큘럼은 정말 체계적이고 과제도 엄청 많더라고요. 1월 25일에 시험을 치른 뒤 바로 집으로 돌아와 지금은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