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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와 조영제의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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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부 안대규 기자) 며칠 전 여의도 샛강역 근처 금융투자협회 건물을 지나다가 얼마전 물러난 조영제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마주쳤습니다. 그는 “자본시장연구원에 사무실을 하나 얻어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영제 전 부원장은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신분으로 잠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영제 전 부원장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2009년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시절 일반은행 검사국장을 역임하며 강도높은 검사로 은행권에선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황영기 KB금융지주회장(현 금융투자협회 회장)의 옷을 벗긴 후 ‘신한사태’, ‘저축은행 사태’, ‘KB국민은행 사태’ 등 금융권의 사건 사고를 전담해 처리했습니다. 권혁세, 최수현 금감원장 체제까지 요직을 두루 맡으며 부원장보를 거쳐 부원장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는 진웅섭 원장 취임 후 자진해서 물러났습니다. 전직 금감원 부원장 신분이고 재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격에 맞는’새 일자리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인 탓에 잠시 자본시장연구원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으로 금감원 퇴임 임원들은 업무와 관련된 회사에 3년간 재취업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 전 부원장이 은행쪽에서 업무를 주로 했지만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일할 자격을 갖춘 상태입니다. 은행권 감독과 검사업무를 주로 해온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조영제 전 부원장은 ‘유럽통화제도’와 관련해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증권감독원에 입사한 후에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초빙연구원과 자본시장감독국 현물시장과장, 증권감독국 시장감독팀장 등을 거쳐 통화·시장 전문가로도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시장연구원에 잠시 머물고 있는 조 전 부원장의 심기가 어딘지 불편해보입니다. 과거 ‘앙숙’이었던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과 같은 빌딩에 있기 때문이죠. 조 전 부원장은 여의도 금융투자협회빌딩 18층에 사무실이 있고 황영기 회장 집무실은 23층에 있습니다.

1999년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을 맡은 이래 삼성증권 사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회장 등으로 승승장구를 했던 황영기 회장은 2009년 9월 금감원의 중징계를 맞아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을 맞게 됩니다. 금융당국은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이었던 황 회장에게 우리은행 재직 시절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에 대한 투자 과정에서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입히는 등 관련 법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제재를 내렸습니다. 그 중심엔 조영제 전 부원장이 있었습니다.

조 전 부원장은 황 회장에 대한 검사를 주도했고, 제재까지 총괄 지휘를 맡아왔습니다. 하지만 황 회장은 징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3여년간의 공방끝에 2013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는 그 사이 금융권의 아무 곳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3년’의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2009년 이후 조 전 부원장은 국장에서 부원장보, 부원장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원장이 3차례(김종창, 권혁세, 최수현) 바뀌는 과정에서도 금감원의 요직을 맡았습니다.

최근 두 명이 한 빌딩에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한 사람은 오랜 ‘야인’생활 끝에 금융투자협회장으로 화려하게 금융권으로 복귀했고, 다른 사람은 진웅섭 금감원장 취임으로 인적쇄신 차원에서 일선에서 물러나 자본시장연구원에 잠시 거쳐를 둔 상황입니다. 2009년과는 ‘갑’과 ‘을’이 바뀐 상황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전신은 금융투자협회의 조사연구실이었고, 현재 협회에서 분리된 후에도 금투협은 막대한 분담금을 담당해 ‘갑’의 위치에 있습니다. 조 전 부원장이 가지고 있던 칼자루는 다시 황 회장에게 놓여있는 것이지요.

‘검투사’와 ‘저승사자’. 두 분이 같은 빌딩에서 우연히 만주칠 때 서로 딴 곳을 응시하는 지, 과거 불편했던 기억들에 대한 앙금은 풀었는 지 궁금해집니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5.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