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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처형, 화형의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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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단어인 줄 알았던 화형이 다시 뉴스 대상이 됐다. IS에 생포됐던 요르단 조종사가 화형에 처해지면서 잔혹한 형태의 사형방법인 화형이 다시 현실에 재등장한 것이다.

참혹한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화형으로 생을 마감했던 가장 유명한 인물의 사례가 떠올랐다. 당시도 화형의 참혹함은 종교와 얽혀 더욱 잔혹한 형태로 진행됐다는 점도 비슷했다. 바로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 다르크의 경우다.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잔 다르크의 최후를 처형 시점에서 다룬 기록은 매우 드물다. 당대의 기록 중에서 잔 다르크가 루앙에서 화형 당할 당시 기록은 사실 (잔 다르크의 반대파였던) 브루고뉴 지역 연대기 작가가 쓴 『파리의 부르주아(bourgeois de Paris)』가 유일하다.

다른 일부 기록들은 잔 다르크 덕에 즉위했던 샤를7세가 잉글랜드 세력을 프랑스에서 몰아낸 뒤 부르고뉴 측과 아라스조약을 맺어 내전을 마치고 쓰인 것으로 잔 다르크 미화로 각색된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파리의 부르주아』에 묘사된 화형장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형 결정이 내려지자 그녀(잔 다르크)는 말뚝에 묶였다. 화형식이 치러지는 무대 위에는 각종 유황이 깔려있었고 그 위에 불이 붙자 잔 다르크는 곧 질식했다. 얼마 안 돼 잔 다르크 옷은 모두 타 버렸다. 잠시 후 불길이 조금 누그러지자 잔 다르크 시체는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군중들에게 공개되게 됐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가졌던 문제, 즉 그녀가 정말로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은밀한 부분도 드러났다. 그녀가 죽었다는 게 완전히 확인되자 사형집행인은 불길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곧 모든 것이 다 타버렸다. 뼈와 살이 모두 재가 돼버렸다”

이처럼 매우 ‘드라이하게’객관적으로 기술된 잔 다르크의 죽음은 이후 샤를7세의 집권에 따라 새롭게 쓰이게 된다. 잔 다르크 덕에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던 샤를7세로선 잔 다르크가 ‘정식’ 마녀재판을 받고 화형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그냥 뒀다간 권력의 정당성에 흠집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잔 다르크가 화형식 말뚝에 매달릴 때 신과 성자를 찾았으며 그녀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은 “예수”였다는 증언이 추가됐다. 다른 증언에선 잔 다르크가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서도 광장에 있던 수사에게 근처 교회에 있던 십자가를 높이 들어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사형집행인이 아무리 유황을 더 뿌려도 잔 다르크의 심장이 타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는 미스터리에 가까운 내용이나, 적군인 영국군들도 ‘위대한 순교자’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는 선전성 문구도 잔 다르크의 죽음을 신비롭게 만들었다.(끝)

***참고한 책***

Gerd Krumeich, 『Jeanne D’arc-Die Geschichte der Jungfrau von Orleans』, C.H.Beck 200

오늘의 신문 - 2024.06.2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