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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정부가 당신의 차량운행정보까지 수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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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기 뉴욕 특파원) “전국의 주요 도로에 자동차 번호판을 판독하는 고성능 카메라가 설치되고, 하루 수백만대의 차량운행 정보를 수집한다. 정부는 수배중이거나 수사중인 범죄자의 추적을 위해 제한된 용도에만 사용될 것이라고 둘러댄다. 하지만 정부의 데이타베이스에는 모든 운전자의 차량 정보는 물론 얼굴을 포함한 인적사항, 주요 동선까지 축적된다. 당신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영화같은 일이 실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미국 뉴욕시와 필라델피아를 잇는 뉴저지 턴파이크(95번 고속도로)의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는 자신의 얼굴과 번호판이 마약단속국(DEA)의 데이타베이스에 저장된다고 각오해야 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미국 내 차량 이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기 위한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2008년부터 가동중입니다.

법무부가 승인한 이 비밀스런 프로그램의 목적은 마약 밀매범을 추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멕시코를 통해 넘어오는 마약의 이동경로와 밀매 자금을 쫓기 위해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네바다, 뉴멕시코, 텍사스 등 미국 남서부 국경 근처에서 이동하는 자동차를 대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추적 범위가 확대됐고, 2011년까지 미국 전역이 100개 지역에 이 판독기가 설치됐습니다. 마약수사 외에도 납치나 살인, 강간 등 다른 범죄와 관련된 차량을 찾기 위한 다목적 용도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습니다. 과속카메라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차이점은 법규를 위반하지 않고 제한속도를 지킨 차량도 찍힌다는 겁니다. 이 판독기는 자동차의 운행시간, 방향, 위치 정보를 수집하고, 심지어 운전자와 승객의 얼굴도 촬영합니다.

법무부는 이 프로그램이 연방법을 준수한다고 밝혔지만, 의회는 “헌법에 위배되면, 상당한 프라이버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식의 논쟁은 결국 공공의 이익과 개인 정보의 보호가 충돌하는 상황을 어떻게 절충하느냐로 귀결됩니다.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사전 논의의 필요성도 논란입니다.

WSJ는 지난해 11월 미국 연방보안국이 범죄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의 휴대폰 사용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통신사 기지국과 비슷한 기능을 갖춘 스캔기기를 활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DEA가 지금까지 10년 넘게 미국인들의 국제전화 기록을 법원의 허가없이 수집했다가 2013년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당신이 법을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뭐가 대수냐. 수사기관이 정보를 남용하지 않는다면 필요하다”는 댓글과 함께 “앞으로 절대 세차를 하지 않겠다. 적어도 번호판은 닦지 않겠다”는 과민반응도 있었습니다. 만약 한국의 수사당국이 효율적인 범죄자 검거를 이유로 전국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차량판독기를 설치한다면 여러분은 찬성하시겠습까? sglee@hankyung.com(끝)

오늘의 신문 - 2024.05.01(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