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실리콘밸리엔 있고 '벤틀리 질주'엔 없는 것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윤정현 증권부 기자) ‘벤틀리 질주극’을 벌인 유정환 몽드드 전 대표의 머리카락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다 합니다. 지난 10일 벤틀리를 몰고 차량 3대를 연이어 들이 받은 그는 다른 차량을 훔쳐 또다른 차량과 충돌했습니다. 피해 차량 여성에게 난동을 부리다 체포됐죠. 게다가 무면허 상태였습니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결국 제정신은 아니었던 겁니다.

서른 중반인 유 전 대표는 성공한 창업자의 아이콘이었습니다. 2009년 그와 친구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공동투자로 물티슈회사 몽드드를 설립했습니다. 유 전 대표는 700만원, 이루마씨는 500만원을 투자해 100만원짜리 월세 사무실에서 시작했습니다. 시제품을 들고 무작정 판매처를 찾아 다닐 정도로 적극적이었고 첫 주문이 들어왔을 당시엔 배송할 때 손편지를 써서 보낼 만큼 공도 들였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 몽드드는 연매출 500억원의 물티슈 1위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백화점 진열대에도 놓였고 일본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스물아홉 젊은 청년은 성공을 너무 일찍 맛 본 걸까요. 그사이 유해물질 논란으로 위기도 맞았지만 적극적인 해명으로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는 직접 공식사이트를 통해 “앞으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정의로운 길만 고집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올린 시기는 지난해 12월 1일, 불과 한달여 전이었네요.

몽드드의 인기요인으로 ‘정직함’을 꼽았고 ‘정의로운 길’만 가겠다던 그에게 경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도로교통법상 사고후 미조치, 무면허운전, 절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습니다.

촉망받던 젊은 경영인, 그는 언제 어디서부터 초심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젊은 혁신기업들은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늘 되새깁니다. 그때의 열정, 당시의 설렘을 간직하고 좌절과 환희의 순간마다 꺼내 봅니다. 자신이 안주하거나 회사가 타락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채찍질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지난해 이맘때 실리콘밸리로 취재를 갔습니다. 젊고 성공한 기업들이었지만 그들은 ‘초심’을 늘 옆에 두고 떠올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숙박 공유기업인 에어비앤비의 조 게비아 창업자는 회의실 중 하나를 2007년 창업 당시 머문 자신의 집 거실과 똑같이 꾸며놓았습니다. 에어비앤비 창업은 조 게비아와 공동창업자인 브라이언 체스키가 자신들의 거실을 5일간 빌려주고 숙박비를 받은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아이디어를 처음 얻고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한 당시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멘로파크 헤커웨이 1번가에 있는 페이스북 사옥 내부 천장은 배관이 훤히 다 드러나 보였습니다. 바닥엔 카펫도 없었고 진한 회색의 시멘트 그대로였습니다. 그곳 직원은 "우리 사업은 아직 ‘미개척지’란 걸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회사가 커져도 처음 시작하던 때를 기억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모바일 메모 서비스 ‘에버노트’를 창업한 필 리빈 최고경영자(CEO)는 “내 목표는 세계 1위 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초심을 지닌 100년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스티븐 잡스가 즐겨 읽었다는 스즈키 순류의 ‘선심 초심’엔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 밖에 없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다행이지만, 유 전 대표처럼 아예 빗나가 버린 경우엔 자신의 몰락뿐 아니라 회사와 직원, 고객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초심은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지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봅니다. 그때의 첫 마음, 오늘은 한번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