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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과 청와대, 대통령 신년 연설의 전략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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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기 뉴욕 특파원) “정치쇼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의회에서 행한 65분짜리 연두교서 연설을 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우선 메세지가 분명합니다. 카피도 훌륭합니다. 연설은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간략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실용적(PRACTICAL)이지 당파적(PARTISAN)이지 않다”는 단어의 댓구도 인상적입니다. 머리에 딱 들어옵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합법적 권한을 사용해 입법부를 견제하겠다는 메세지도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여소야대 의회상황에 기죽지 않겠다는 겁니다. 오바마케어, 금융개혁법안인 도드-프랭크법안,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미리 공화당에서 헛힘 쓰지 말라는 얘기같습니다.

커뮤니티 대학 학비 면제, 고액 소득자의 세금탈루 차단, 자유롭고 공개적인 인터넷의 사용 등 3가지는 국회가 도와줘야 한다는 압박도 명료하게 전달했습니다. 마지막에 기후변화보다 더 큰 위협도 없다는 자신의 공약도 재확인시켰습니다.

물론 냉정하게 따져보면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외신에서는 ‘로빈 후드식 아젠다’라고 평가절하하더군요. 한 마디로 정치쇼라는 겁니다.

근데 이 연설은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먹혔습니다’. CNN은 연설 이 끝난 뒤 긴급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시청자들의 72%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방향이 옳다는 의견을 표시했습니다.

시청자들을 공감하게 만든 건 대통령 연두교서의 전달 전략이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회사인 A케이스 분석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 백악관 유튜브 계정에 3일만에 조회수 64만을 넘긴 동영상이 올라왔다. ‘Big Block of Cheese Day Is Back’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에는 드라마 ‘웨스트윙’을 패러디한 등장인물들의 전화 대화가 나온다. 마틴 쉰을 비롯해 실제 웨스트윙 출연 배우도 몇 명 나온다. 연두교서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이다.

백악관은 연설이 시작되기 전 몇주동안 집중적인 온라인 홍보활동을 벌였다. 홈페이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총 동원해 아젠다를 미리 소개하고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연설 의제의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미국 관리예산처 부국장인 Brian Deese이 등장해 백악관 회의와 연설문 작성 등 연설 준비과정을 소개한다. 예상 의제도 미리 제시한다. 2년제 커뮤니티 대학 무상 교육 제안은 이미 연설전부터 논란이 뜨겁다. 연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슈에 불을 붙여 연설에 폭발적 힘을 더하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65분 짜리 연두교서를 지켜보면서 여당에서조차 지루했다고 평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일단 대통령의 연설 내용은 1급 기밀사항입니다. 사전 배경설명도 없습니다. 청와대 특유의 비밀주의가 연설 직전까지 철저히 유지돼야 합니다. 대변인도 물론 수석비서관들도 함구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백악관은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서 던질 이슈를 공개하고, 관심을 증폭시켰고, 사회적 논란을 증폭시키면서 아젠다를 대통령으로 가져오도록 전략을 짰습니다. 발상의 전환과 파격, 청와대도 한 번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sglee@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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