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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세금폭탄' 을 둘러싼 진실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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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연 정치부 기자) ‘13월의 보너스’라고 불리던 직장인 연말정산이 ‘13월의 세금폭탄’이 됐다는 비판이 일면서 정치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소득공제 대신 세액공제가 확대된 2013년 말 세법 개정안이 이번 연말 정산부터 적용돼 직장인들이 세금을 환급받기는커녕 추가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대거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유리지갑’ 직장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자 여야는 뒤늦게 진실공방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세법개정안 통과 후 연간 총 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는 세부담이 늘지 않고, 5500만원이상 7000만원 이하는 1인당 평균 2~3만원만 세금부담이 증가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납세자연맹이 환급액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연봉 3000만원대를 받는 미혼 직장인의 경우 2013년 보다 17만원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합니다. 납세자연맹은 출산 공제, 다자녀 공제 등을 폐지하면서 연봉 5000만원을 받는 직장인 중 6세 이하 자녀가 두 명이면 작년보다 15만원, 세 명이면 36만 원 가량을 더 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싱글세 폭탄’, ‘다둥이가정세금폭탄’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연봉 7000만~8000만 원의 직장인들은 추가 세 부담이 70여만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여당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습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9일 비상대책회의에서 한국납세자연맹 발표자료를 예시로 들며 “5500만원 이하 직장인은 추가적인 세 부담이 없다는 정부 여당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었다. 보통 봉급소득자들 중 5000만원 이하 구간도 수십만원을 내게 된다”며 “우리당은 다음 달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윤호중 의원 주관으로 이와 관련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세액공제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세액공제율을 현행 15%에서 5%포인트정도 상향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불똥이 정치권으로 튀자 새누리당은 나성린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강석훈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김현숙 원내대변인 등 ‘경제통’으로 불리는 의원들이 줄줄이 나와 세법개정안의 정당성을 강조했습니다. 연말 비선실세 의혹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한 가운데 천만이 넘는 샐러리맨들의 분노와 조세저항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죠.

새누리당은 세법개정안 때문에 연말정산 환급분이 감소한 것은 ‘많이 걷고 많이 환급’에서 ‘적게 걷고 적게 환급’하는 방식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예를 들어 월급 500만원 직장인의 매월 원천징수금액은 27만원에서 24만원으로 줄었다”며 “결국 매월 세금을 적게 걷음으로써 연말정산에서는 환급액이 예년보다 감소하는 측면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함으로써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했던 기존의 ‘소득 역진성’도 완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석훈 새누리당 기재위 간사는 “평균치로 계산한 것이기에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평균적으로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상대적 저소득층은 세금부담이 줄어들고, 7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세금이 늘어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존의 소득공제는 소득에서 해당 공제액을 먼저 뺀 뒤 나머지 소득에 대해서만 소득세를 매기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연봉이 1000만원인 사람에게 10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을 줄 경우 900만원에 대해서만 소득세를 매기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100만원의 공제 혜택을 받는다고 하면, 소득이 적어 소득세 최저세율(6%)을 적용받는 사람은 6만원(100만원×0.06)의 세금이 줄지만 소득세 최고세율(38%)을 적용받는 사람은 38만원(100만원×0.38)의 세금이 줄어들어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방식입니다.

반면 세액공제는 세금이 결정된 뒤 공제를 해 주는 제도로, 세액공제액이 15만원인 경우 소득이 많든 적든 깎이는 세금 액수는 똑같이 15만원입니다. 강 의원은 “소득 역진적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이라며 “현행 세액공제율이 15%다. 소득이 적어 6% 세율을 적용하던 분들은 15% 세율을 적용하면 6만원 깎이던 것에서 15만원이 깎인다. 결국 세금을 9만원 덜 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6세 이하 자녀에 대한 추가 공제, 출산·입양 공제, 다자녀추가공제 등 부양 가족에 대한 공제가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세제(EITC), 자녀장려세제(CTC)등의 혜택도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올해부터 총소득 4000만 원 이하 근로자 및 자영업자에게 자녀 1인당 최대 50만 원의 자녀장려금을 지원하고 올해부터 근로 장려금도 총소득 2500만 원 이하로 확대했다”며 “약 5000억 원의 순수한 저소득층지원 효과가 금년 중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장 환급액이 줄어든 데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해서일까요.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20일 출산공제를 부활하고 부양가족공제를 확대해 내년도 연말정산 때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이 주장하는 세액공제율 인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나성린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세액공제율을 일률적으로 높이자는 안은 세수 손실이 너무 크고 고소득자도 같이 혜택을 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한다면 중상층(총급여 7천만원 안팎을 의미) 이하의 문제점에 한정해서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연봉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는 세부담이 늘지 않는다는 정부·여당과 연봉 5500만원 이하 직장인도 세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야당의 주장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연말정산후 환급액을 받아봐도 ‘부자증세(여당주장)’인지 ‘세금폭탄(야당 주장)’인지 결론이 날 것 같지가 않네요.

공제혜택 등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환급액이나 추가납부액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수 많은 샐러리맨들이 ‘세금폭탄’을 맞고 울상을 짓더라도 반대 사례가 제시되면 조세저항의 명분은 약해지게 됩니다.정교한 세수 추계없이 세법을 고친 정부와 이들 덥썩 합의해준 정치권을 탓할 수 밖에요.(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