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머리를 짧게 잘랐다.
정석원: 새해를 맞이한 것도 있고, 또 다음 영화 때문에 짧게 잘라야 했다. 더 어려보인다고 하더라. 난 원래 내 나이로 많이들 안보던데, 이제는 어려보인다고 한다(웃음). 처음에는 정말 내 나이를 들으면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다.
Q. 드라마가 끝나고는 어떻게 지냈나.
정석원: 쉬었다. 종방연도 하고 또 남자 배우들끼리 모여서 술 한 잔 했다. 신하균 씨, 이준, 고윤 이렇게 모였다.
Q. ‘해운대의 연인들’ 이후 거의 2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으로 남았나.
정석원: 우리끼리 늘 ‘괜찮은 작품인데 더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이야기 했다. 정이건 캐릭터의 입장에서 일을 저질러놓았지만 금방 사그라든 느낌이 들었달까. 최고봉(신하균)과 아들(이준)의 관계, 은하수(장나라)와의 관계가 주된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만으로도 16부작 안에 할 것들이 많아서 이건의 이야기를 풀기에 버거웠던 것이 있었다.
Q. 그래도 이건이라는 캐릭터는 지금껏 주로 보여진 이미지와는 간극이 있기에 도전할 만한 맛은 났을 것 같다.
정석원: 스스로도 정이건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왜 호텔을 가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사실 시놉에는 정이건이 고아로 나온다. 드라마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웃음). 그렇게 외로운 사람인데 성취욕이 강하니 호텔에 대한 욕망도 컸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젊은 나이에 멀쩡하게 생겨 또 그 정도 위치까지 올라갔는데 뭐가 두려워 호텔까지 차지하려 하나 궁금하더라. 홍지윤(박예진)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라는 질문도 해보았다. 왜 남자는 여자를 위해 움직이게 되는 것들도 있으니까.
Q. 그런 고민 끝에 결론은?
정석원: 모든 측면에서 ‘난 도저히 안되나’가 그 시작 아니었을까. 하지만 쪽대본이다 보니 이렇게 정해두고 연기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는 생각도 했다. 극이 어떤 식으로 뻗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홍지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결국 홍지윤마저 이용해버리게 되지 않았나(웃음).
Q. 한편으로 ‘미스터백’은 갑을에 대한 이슈가 많은 이 땅에서 도리어 선한 갑와 악한 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은 것에 실패하지 않았나라는 지적도 있었다.
정석원: 결국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부자이건 아니건 순간 순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끔 해주는 것이다.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고 행복이 뭔지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바가 있었다. 내 역할은 그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있어 하나의 연결고리, 기능적 역할을 했으나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좋았다.
Q. 당신은 어떤 타입?
정석원: 나는 순간순간 행복한 사람이다. 주변에도 늘 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과거에 얽매여 있다거나 하지 않고 늘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시련을 겪었다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승화하고, 잘 못된 일도 합리화 시킨다. 이번 ‘미스터백’ 촬영도 과정은 괴롭고 힘들지만, 내가 얻어간 것이 무엇이지라 생각하며 항상 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Q.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드라마를 하지 않았나.
정석원: 연극을 했다. 그 전부터 연극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마침 하게 됐다. 배우들 중에도 연극 무대 출신이 많고, 왜 연기의 뿌리는 연극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주말 마다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던 차, 우연히 ‘사물의 비밀’에서 함께 했던 배우분을 만나 술 마시다 연극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스케줄이 꼬여 확답은 못하던 차에 지금 소속사 대표를 만나 계약을 하게 됐고, 소속사에서도 연극을 제안하더라.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Q. 처음 경험해 본 연극은?
정석원: 연극은 과연 어떤 것일까, 뭘까, 궁금했는데 지옥같았다(웃음). 그만큼 힘들었으나 버티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버티다보니 너무 행복하더라. 힘들수록 행복을 느끼나 보다. 군 시절에도 너무 힘든데 매연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했다. 그 때와 비슷했다. 연극을 하면서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Q.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앞에 있는 관객 아닐까.
정석원: 선배들은 의식과 인식의 차이라고 하더라. 관객이 카메라라고 생각하며 했다. 고요했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쏟아낸 적이 없었는데 주어진 준비 시간 안에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들어가는 것도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가 생기는데, 그 와중에 마인드 콘트롤을 하는 법도 배웠다. 앞으로도 하고 싶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이니까.
Q. 연극 이후 드라마는 그 전과 다르던가.
정석원: 연극했던 방식이 몸에 남아서 그런지 카메라 앞에 오랜만에 서게 되어서 스스로는 편하게 한다고 했지만, 스며드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더라.
Q. ‘미스터백’의 정이건은 캐릭터적 변신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는데, 앞으로 또 만나고 싶은 캐릭터는.
정석원: 나는 도전정신이 투철하다. 가리는 것 없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다 하려고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캐릭터는 언젠가 만나진다고 생각한다. 원래 내 꿈은 액션이었다. 스턴트 생활을 하다 운 좋게 캐스팅이 돼서 연기를 하게 됐다. 늘 내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고질적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운전처럼 그 문제에만 너무 집중해도 안되고 여러가지를 다 봐야한다. 또 그럴 만한 여유가 있어야 연기도 잘 하게 되는 것 같다.
Q. 아내 백지영에게도 정이건은 낯설었을까.
정석원: 워낙에 응원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다. 모니터도 챙겨서 해준다. 내가 진짜 화내는 모습을 아는 사람이니까 그런 모습이 정이건에게 묻어나있다고 하더라.
Q. 여하튼 차기작은 ‘대호’다.
정석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정말 한 마디도 못하겠다. 고등학교 때 동인천을 지나가 ‘파이란’ 촬영하는 것을 봤다. 그 때 멀리서 바라본 최민식 선배와 연기를 하게 됐다. 말도 안된다.
Q. 참, 마침 서른이 되어 1년을 보냈다. 그 소감은?
정석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물 아홉살에 일이 있었는데 작년은 정리가 되는 해였다. 좋은 회사도 만나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고 연극에도 도전했다. (끝)
사진. 구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