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해운대’로 천만 관객 ‘쓰나미’를 보여줬던 윤제균 감독으로서는 6년 만에 다시 느끼는 흥행의 ‘맛’. 하지만 천만까지 달리면서 영화는 각종 정치적 잡음과 이념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리기도 했다. 영화를 둘러싼 갑론을박 속에서 정작 윤제균 감독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윤제균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천만 영화’가 두 편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지 감이 안 온다.
윤제균: ‘해운대’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내가 천만감독이 되다니’ 가슴 벅차고 흥분되고 그랬다. 지금은 그보다는 감사한 마음일 뿐이다. 천만이라는 건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Q. 영화가 처음 공개된 후, 여러 곳에서 일찍이 ‘최초로 천만 영화를 두 개 보유한 감독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개봉 첫 주 스코어가 기대에 비해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2주차부터 관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첫 주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윤제균: 첫 주에는 천만을 꿈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쉬웠지만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15년간 16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내 나름대로 흥행에 대한 지론이 생겼다. 영화를 1,2년 하고 말 것이 아니니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다만 ‘손익분기점’(600만 명)은 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Q. 당신 작품들을 보면, 입소문을 타서 뒤늦게 치고 올라간 경우가 많다.
윤제균: 맞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이 모두 그랬다. ‘댄싱퀸’도 마찬가지고. 영화를 본 이후에 만족하신 분들을 통해 입소문 탄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Q. 솔직히 말해보자. 허지웅·진중권 등 논객들의 평가가 몰고 온 정치적 논란이 이번 흥행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고 보지 않나.
윤제균: 인정한다.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했다. 패닉이었다. 이런 논란이 있을까봐 정치색을 뺐는데, 그걸 뺐다고 오히려 더 정치적이라고 공격받을 줄 전혀 예상 못했으니까. 이 영화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지역과 계층간의 ‘소통과 화합’이었다. 그런데 개봉을 하니 되레 ‘논란과 갈등’이 폭발해버렸다. 그때 굉장히 많은 인터뷰 섭외가 들어왔는데,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순수하게 아버지에 대한 헌사로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게 왜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야 하는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됐거든. 2주 동안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게 바로 영화 아니겠는가’다. 만든 사람의 의도와 보는 사람의 해석이 충분히 다를 수 있는 게 영화라는 콘텐츠라고 결론 내렸다.
Q. 그렇다면 영화 만드는 입장에서는 ‘본인이 만드는 콘텐츠와 받아들이는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을 때’ 가장 행복할까.
윤제균: 행복하다기보다는 ‘그래, 내 의도가 맞았어’ 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겠지. 전달하고 싶었던 바가 너무 크게 벗어나버리면 ‘내가 영화를 잘못 만든 건가’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Q. 박근혜 대통령의 ‘국제시장’ 언급,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국제시장’ 관람 등도 이슈가 됐다.
윤제균: 아까 이야기했듯이 만든 사람의 의도와 해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국기 경례 장면’이 풍자냐, 애국이냐! 사회비판적인 시각에서는 풍자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애국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걸 만든 내 의도는 무엇이냐. 풍자도 애국도 아니다. 극에 달한 부부간의 갈등을 무겁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결하려고 넣은 신이었는데 이토록 이슈가 될 줄 상상도 못했다.
Q. ‘소통과 화합’이라는 목표가 반대 방향으로 폭발했으니, ‘국제시장’은 아쉬운 결과물로 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까.
윤제균: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인터넷 댓글을 안 보는데 이번에는 다 찾아봤다. 2주 동안 보면서 다행이라 느낀 것은 대대수의 일반 관객들은 나의 의도와 진심을 알아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고 이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나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서 패닉에 빠졌는데, 아니었다. 일부가 나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을 내려서 그걸 가지고 다수가 공방을 벌이는 걸 보고, 나의 진심이 어느 정도 관객 분들에게 전달됐다고 느꼈다.
Q. 그런 걸 보면 영화라는 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매력이 있고.
윤제균: 예전에는 단순하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2시간 재미있게 돈 내고 보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어떻게 보면 가볍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달리 보게 됐다. 이토록 파급력이 크구나, 새삼 깨달았다.
Q. 그렇다면 ‘뻔’할 수 있는 질문을 하나 하자.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말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윤제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일개 상업영화 감독일 뿐이다. 대중들이 재미있어 할 이야기를 가공해서 만드는 사람일 뿐,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순간 내 롤을 벗어난다고 본다.
Q. ‘국제시장’은 흥남철수-파독광부-베트남전-이산가족찾기 등 네 개의 주요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다.
윤제균: ‘국제시장’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네 가지 시퀀스를 정하는 거였다. 일단 근현대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6.25는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완벽한 결말은 아니지만 6.25를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이 ‘이산가족찾기’라고 생각했고. 파독의 경우 한국경제사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당시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국내에 보내온 돈이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했다고 하더라. 엄청난 수치였다. 끝까지 고민한 것은 베트남전과 중동건설이었다. 중동의 모래바람에서 피 땀 흘리며 일하는 분들의 모습은 이전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나 넣고 싶었다. 그럼에도 결국 베트남으로 간 이유는 외화벌이 외에 플러스알파를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베트남의 경우 우리가 파병을 보낸 곳이니, 6.25 때와 역지사지 할 수 있는 시퀀스가 되겠다 생각했다.
Q. 논란이 있을까봐 정치색을 뺐다고 했는데, 말했듯이 그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만약 이런 엄청난 논란을 예상했다면, 그래도 지금과 같은 네 가지 시퀀스를 택할 텐가. 아니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만한 공간을 하나 넣을 것 같나.
윤제균: 지금과 똑같이 갈 것 같다. ‘국제시장’은 정치적, 사회비판적, 역사의식적인 부분을 의도한 영화가 아니다. 만약 50부작 대하 드라마였다면 정치적인 이야기도 분명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2시간이라는 시간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 시간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고생한 우리 아버지였다. 그 이야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이다.
Q. 개인적으로 ‘국제시장’을 둘러싼 이념 대립이 과하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다만, ‘책임지지 않은 어른’에 대한 허지웅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근 몇 년간 세대갈등이 크다. 20-30대들이 그 문제를 화두로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의견이라고 본다.
윤제균: 솔직히 말하면, 책임지지 않는 세대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국제시장’은 내 아버지에서 출발한 영화다. 엄밀히 말하면 내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정년퇴직 후 주식으로 돈을 다 날리셨으니까. 그로인해 유산은 커녕 빚을 물려받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무책임한 거다. 하지만 나는 고맙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책임지려 하신 과정을 옆에서 다 지켜봤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립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그랬듯 다수는, 우리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일부 어른들의 책임지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힘든 세상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소수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왜 평범한 다수의 우리 아버지들이 책임지지 못했다며 비난 받아야 하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Q. 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변호인’(양우석 감독)과 ‘국제시장’의 비교질문에 당황했다고 들었는데, 양우석 감독님과는 친분이 있는 걸로 안다.
윤제균: 갑작스러운 질문이어서 살짝 당황했었다.(웃음) 양우석 감독과는 친하다. 학교 동문이기도 하고.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양우석 감독도 ‘변호인’이 개봉했을 때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겠구나, 싶었다.
Q. 댓글들을 다 찾아봤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댓글은?
윤제균: 별을 10개 주면서 ‘이거 윤제균 영화 맞아?’라고 한 댓글이 기억난다. 평균 평점 9.0이 넘는 대중의 평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국제시장’은 현재 여러 포털사이트에서 9.0이 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 평론가들의 별 열개보다도 나에게 더욱 소중하다. 100-200명도 아니고, 수천 명이 그렇게 높은 점수를 줬다는 것에 눈물 나게 감사하다.(계속) (끝)
사진. 구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