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섬뜩하게 우리와 닮은 일본의 세대갈등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김동욱의 역사읽기) ‘착각에 빠져사는 정년자’, ‘시키기만 하는 관리직’, ‘쓸 수 없는 베테랑’, ‘쇼와(昭和·1925~1989)적인 인간’ 그리고 ‘어린이 같은 아저씨’.

일본 젊은이들이 일본판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를 비롯한 고령자들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이같은 표현들은 2010년 일본 노인들의 사회부적응을 다룬 다카이 나오유키(高井尙之)의 책 『단카이 몬스터(団塊 モンスター)』에서 고령근로자의 민폐를 소개하는 에피소드들과 함께 등장했다.

일본 젊은이들이 보기에 단카이세대는 이해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집요하게 불만만 쏟아내는 인간군상이다. 퇴직을 했는데도 회사에 출근해선 이전 부하에게 이리저리 명령하는 사례까지 등장한다고 한다.

정년퇴직 후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려본 사람들이 세제와 섬유유연제, 표백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거나 주변에 물어서 해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뜸 제조회사로 전화해선 “상품명만 봐선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없다”는 불만을 내놓는 식이다. 어차피 수신자 부담 전화인 만큼 부담없이 오랫동안 통화할 뿐 아니라 자존심은 세고 성격은 급해서 대응이 조금만 부족하면 바로 화를 내는 특성도 지녔다. 심심하면 “사장(상사)바꿔”라며 목청을 돋운다.

이들에 대해 일본 젊은이들은 ‘망주(妄走)노인’, ‘폭주(暴走)노인’, ‘단카이 몬스터’ 라고 부르며 공공연히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카이 세대에게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진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단카이 세대는 젊었을 적 기존세력에 반발하던 반권위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권위를 즐기는 세대가 됐다. 똘똘 뭉친 돌덩이라는 의미에서 ‘단카이(団塊)’세대라고 불렸지만 이젠 뭉뚱그려 단카이라고 평가하면 반발한다.

일본경제를 일으킨 주역이라는 자부심은 강하고, 또 본인들은 절대 자신을 노인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퇴직 후 지역사회에 진출할 때도 전성기 기업전사로서의 특성은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다.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만큼 제2의 인생에 대한 준비는 빈약하다. 추상적인 스케줄로 갈팡질팡하는 게 보통이고, 시간은 넘치는데 취미는 없다.

퇴직 후에도 자신의 존재의의를 조직에 두는 경우도 많다. 퇴직 후에도 ‘XX회사 OB회 아무개’라는 명함을 만들어 다니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도 따뜻하지만은 않다. 평생직장만 알고 가정을 소홀히 한 남편들에 대해 부인들은 ‘물기 묻은 낙엽(濡れ落ち葉)’이나 ‘대형 쓰레기(粗大ゴミ)’라며 구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느 새 일본에서 노인은 ‘상담역(ご意見番)’이나 ‘지혜주머니’로 불리던 존경받는 존재에서 젊은이들의 분노의 대상이 됐다. 구체적으로 이 같은 젊은이들의 노인에 대한 분노는 연금갈등 형태로 나타났다.

청년세대 중 일부는 “고도성장이라는 배부른 잔치를 즐긴 고령세대가 음식구경 조차 못한 청년세대에게 이젠 설거지마저 시키고 있다”며 분노한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세대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치 세력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노소간의 불공정과 불평등의 갈등요인을 풀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 나아진다’는 설문문항에는 한국 청년의 43.0%만이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사회적 부와 권력을 쥐고있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도 강하다.

반면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 대해 “우리 때는 고생이 더 심했다”며 “요즘 젊은 애들은 나약하다”고 비난한다. 일본 사회를 강타했던 세대간 갈등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김동욱 증권부 기자)(끝)

***참고한 책***
전영수,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맛있는책 2011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