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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과 원희룡, 두 잠룡의 '같은 듯 다른'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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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구 정치부 기자) 박근혜 정권이 이제 3년 차를 맞았지만 벌써 차기 대권주자의 진용이 두터워 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여론 지지율에서 박원순, 문재인, 김무성, 안철수 등 선발주자를 앞서 나가는 형세입니다. 이들과 격차를 좁히면서 유의미한 지지율을 확보한 동시에 ‘스토리'를 갖고 있는 후발 ‘잠룡’의 대표주자로 안희정 충남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안 지사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일궈 낸 일등공신입니다. 이후 대선 불법자금수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었지만, 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젊은 나이에 광역단체장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친노‘의 구심점이었던 안 지사는 계파의 울타리를 벗어나 영남 호남이 아닌 ‘제3의 정치지대'인 충청도에서 자기 정치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가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이유입니다.

안 지사가 야권의 ‘잠룡’이라면 여권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있습니다. 사실 ‘잠룡’의 원조는 원 지사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용(龍)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젊은 나이에 제16대부터 제18대까지 3선의 국회의원으로 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관록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생’인 초선의원 비율이 80%이상인 국회에서 3선은 그야말로 ‘완생’격입니다. 그러면서도 ‘남원정’이라는 닉네임과 함께 새누리당 내 ‘개혁적 소장파’로 불려온 전력이 있습니다. 원 지사는 이미 제주지사가 대권을 향한 ‘디딤돌’이라고 밝힌 바도 있습니다.

‘친노’와 ‘보수'로 대표되는 둘은 양 진영의 껍질을 깨고나와 스스로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힌 ‘히스토리(his story)’를 갖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안 지사는 친노 ‘폐족’선언으로, 원 지사는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용기를 보여줬습니다. 둘은 전통적 지지층에만 의존하지 않고 좌우로 보폭을 넓혀 가려는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포럼에서 만난 둘은 ‘같은 듯 다른’ 정치노선을 드러내며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원 지사는 “박 대통령의 100% 대한민국’을 집권 핵심세력이 포기했거나 약화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반대한다고 국민이 아니지 않다. 또 세월호 참사는 구조적인 문제로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가족들이 아파하는 만큼 정부와 대통령이 아파하고 있는가”라고 공격했습니다. 소장파 시절의 ‘그 느낌 그대로' 현 정부의 불통(不通)을 정면 비판한 것입니다.

반면 안 지사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실망하기에는 이르다”라며, “현재 대통령을 정점으로 모든 게 쏠리기 때문에 과부하가 되고 여론은 냉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대통령으로 임기는 개인의 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원 지사는 웃으면서 “(안 지사와) 당이 바뀐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둘의 ‘뒤 바뀐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지사가 정당과 진영의 논리에서 빠져나와 ‘국가와 국민’을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입니다. 원 지사는 개헌론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 하면서 “안희정 지사님, (대선에) 혹시 나가십니까”라고 기습 질문한 뒤, “진영을 넘어 유력주자들이 합의해버리자. 단계적으로 시급한 부분부터 하는 것이다. 2017년과 2018년의 질서를 맞이하면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과제다”라고 선공을 날렸습니다.

안 지사는 웃어넘기기만 했지만 평소 그의 조심스러운 성격을 감안하면 ‘긍정’에 가깝다는게 주변의 전언입니다. 고지식할 정도로 신중한 안 지사의 성품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안지사측 측근이 그가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이 너무 자연스러워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합니다. 그 사진을 본 안지사가 사진을 당장 내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할머니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데 내가 10cm 높은 보도 블럭에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안 지사가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 출마에 앞서 그의 출판기념회에 노 전대통령이 축하 동영상을 보냈을 때입니다. 노 전대통령이 그를 참모가 아닌 ‘정치적 동지’로 추켜세운 9분 가량의 동영상을 안 지사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고생한 안 지사를 떠올리며 한참을 흐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안 지사는 “정치적 동지이자 주군이기도 했던 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며 동영상을 서랍 깊숙이 보관했습니다. 이 동영상은 2009년 노 전 대통령 49재에 공개됐습니다.

각각 83학번과 82학번인 안 지사와 원 지사는 올해 둘 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서 공자(孔子)가 말한 대로 ‘하늘의 뜻’을 알만한 나이와 정치적 경륜을 갖추게 된 셈입니다. 이제 안지사와 원 지사가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지형을 어떻게 활용하고, 선두권 잠룡들과 격차를 얼마나 좁힐 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뒤로 둘의 정치적 입지는 대선흥행과 판도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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