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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한 경계를 무용지물로 만든 '극강의 암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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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테러리스트들이 종교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언론사를 급습, 언론인 10여 명을 사망케 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프랑스 수도 한복판에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비롯해 각종 무기류가 어떻게 반입될 수 있었는지, 에펠탑 인근 언론사 내부에서 학살극이 벌어질 동안 프랑스 군경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역사서 속에서 최강의 경호를 뚫었던 이슬람 암살자단의 사례가 오버랩됐다.

철통같은 경호를 무색하게 만드는 암살자단이 있었다. 그들은 서구어권에서 ‘암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암살 대상으로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로만 골랐다.

십자군 전쟁 시 예루살렘 라틴왕국의 왕이던 콘라드와 두 명의 칼리프, 셀주크 투르크의 실력자였던 니잠 알 물크를 비롯해 수많은 이슬람과 십자군 지도자를 비명에 보냈고 사자심왕 리처드와 이슬람권의 영웅 살라딘의 목숨도 노렸다.

바로 암살이라는 영어단어 ‘어새신(assassin)’의 어원이 된 ‘하시시’라고 반대파들이 부르던 암살자단이 주인공이다. 전설의 산상노인(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에도 나온다.)이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암살자단은 시리아와 이란을 무대로 공포를 확산시켰고, 철저한 충성심에 자기희생, 대의명분을 위한 죽음으로 천국에 가리라는 희망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서구 학자들은 오늘날 이슬람권 테러조직과 암살자단의 유사성에 주목, 이들을 최초의 테러리스트로 부르기도 한다.

이슬람 시아파 중 7대 이맘파, 혹은 이스마일파로 불리는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암살자단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주 타깃을 십자군이 아닌 주류 수니파 무슬림에 두고 있었다. 기존 무슬림 지배층에 저항하면서 이슬람권 내부에 영향력이 큰 이슬람 엘리트들을 주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세속의 군주와 리더들. 왕과 장군, 재상, 종교 지도자들 같은 강력한 권한을 지닌 거물들만 암살대상으로 삼았다. 돈을 위해 일반인들을 건드리는 그런 존재는 아니었다. 무기도 오직 단도 한가지였다.

당시에도 화살과 독약 등 장거리에서 사용할 안전한 무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오직 단도만을 고집했다.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최고의 경호를 받는 타깃들만 선정해서 가장 치명적인 수단으로 공격한 것인 셈이다. 이들 암살자단은 암살 후 탈출하려 하지도 않았고 개인의 목숨은 중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암살 미션에서 살아남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당대인들은 이들 암살자단을 두고 “피에 굶주린 자들로 악마와도 같지만 마치 천사처럼 변장을 해선, 천사의 언어와 몸짓, 의복, 관습 행동을 모방해 양의 탈속에 숨어 있다가 결정적일 때 죽음을 선사하는 자들”로 두려워하곤 했다.

그들은 자세한 정보를 구할 길도 없고, 일반인과 구별해낼 방법도 없는 존재로 무자비하고 완벽한 킬러로 인식됐다. 특히 이들은 ‘산상의 노인’이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인물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부분이 신화화됐다.

암살자단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17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이집트와 시리아에 보낸 사신들에 대한 기록에서 나온다.

“다마스커스와 안티오크, 알레포 인근에는 산에 사는 사라센 한 종족이 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헤이세시니(Heyssessini)’라고 부른다. 그들은 무법자들이며 사라센인의 법에 위반해 돼지고기를 먹는다. 어머니와 자매 구분도 없이 여자들을 공유하며 산속 요새에 거주한다. 그들의 지도자는 모든 사라센 제후들과 인근 기독교인 영주들에게 공포의 대상인데 아주 깜짝 놀랄만한 방법으로 목숨을 빼앗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첫 언급이 나오는 것.

여기서 말하는 ‘깜짝 놀랄 만한’ 방법이라는 것은 산중 성곽 인근 목동의 자녀들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데려다 키우는 것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로마어, 아랍어 등을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집중 교육시킨 뒤 산상노인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도록 양육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산상노인의 말에 복종하면 사후 천국이 보장된다는 의식을 주입받고 이에 따라 황금단도를 받은 뒤엔 죽이고자 하는 자에게 보내지면 무조건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

몇 년 후 티레의 교주 윌리엄이 십자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암살자단은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윌리엄은 “10개의 강력한 산상요새를 가지고 6만 명 이상 백성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지도자는 세습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선출되며 지도자를 ‘연장자’라 부른다. 지도자에 대한 복종과 경외심이 대단해서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열정을 다해 이뤄낸다. 지도자가 단도를 주고 어떤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결과는 생각지 않고 무조건 그 일을 해낸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보다 조금 후대의 기록에선 좀 더 신화적으로 각색된 얘기가 전해진다. 이야기인 즉, 산상노인이 두 개의 거대한 산 사이 계곡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숨겨 놓은 채 정원에는 와인과 꿀, 우유와 물이 끝없이 흐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이 널려있어 산상노인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파라다이스에 온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산상노인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아시신(ASHISHIN)‘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은 이 정원에 갈 수 없게 했고 아시신이 되고자 하는 20대의 세속 청년들을 우선 혼절시킨 뒤 정원에 데려와 깨어난 뒤 천국을 맛보게 했다고 한다. 천국을 경험한 청년들은 세속에 내려가 산상노인의 임무를 완수하고 죽으면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죽음을 불사하고 암살임무를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이들 암살자단의 실체는 아랍권과 기독교권 모두에게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그들이 주는 공포심은 대단했다. 이스마일 파였던 이들은 시아파 등 소수파는 제외한 채 수니파 지도자들을 주로 노렸고 종교적 적대관계였던 기독교에 대해서도 칼날을 세웠다.

1192년 까지 암살자단의 단도아래 수많은 무슬림 왕과 제후들, 고위 관료들, 십자군 인사들이 쓰러졌다. 예루살렘 라틴왕국의 왕이었던 몽페라의 콘라드도 그 희생자중 한명이었다.(골목길을 돌다 단도에 찔렸다.) 암살자단은 1127년 이스마일파를 탄압한 아랍 태수를 말 시장에서 암살한 것을 시작으로 동쪽으로는 베르크야루크와 산자르, 서쪽으로는 살라딘과 사자심왕 리처드까지 암살목표 리스트에 올렸었다. 실제 셀주크조가 이란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혁혁한 역할을 했던 거물급 태수 니잠 알 물크가 1092년 목숨을 잃었고 두 명의 칼리프도 암살자단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슬람권의 영웅 살라딘(살라 웃 딘 아유브)에 대한 암살시도도 있었다.

이처럼 암살자단은 너무 유명해서 머나먼 유럽에서도 “암살자단이 보냈다”라는 풍문이 도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1158년 밀라노를 포위했을 때 자칭 암살자단 소속이라는 한 암살자가 바르바로사의 캠프에서 체포됐고 1195년 사자심왕 리처드가 시농에 있을 때는 최소 15명의 암살자단을 자임하는 자객들이 체포됐다. 그들은 프랑스 국왕도 죽일 예정이었다고 토설하기 까지 했다.

반대파들에 의해 ‘하시시’로 불리는 이들이 이처럼 유명해지면서 영어 등 유럽 어에서 암살을 뜻하는 ‘assassin’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 까지 했다.

원래 아랍어 하시시(hashish)의 원뜻은 약초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환각작용이 있는 마약을 복용해 몽롱한 상태에서 암살에 나섰다는 의미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매혹적인 설명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중동사의 권위자 버나드 루이스 프린스턴대 교수의 설명이다. 암살자단이 활약할 당시 하시시의 약효는 이미 일반적인 것으로 이스마일파던 일반 수니파던 모두 알고 있어 그것에 속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암살자단에 대한 반대파들이 암살자단의 ‘신비한’ 실적을 폄하하는 의미에서 비하한 이름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이처럼 중동과 근동,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암살자단은 몽골군의 철저한 파괴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신화 속의 한 장에 자리하게 된다.(김동욱 증권부 기자)

***참고한 책***

Bernard Lewis, The Assassins- A Radical Sect in Islam, Basic Books 2003

Steven Runciman, A History of the Crusades 2- The Kingdom of Jerusalem, Penguin Books 1990

Hans Eberhard Mayer, The Crusades,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Edward Burman, The Templars - Knights of God, Destiny Books 1986

Francis Robinson(Edited),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Islamic Worl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