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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헤밍웨이와 쿠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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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모 워싱턴 특파원) 아바나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30분정도 차를 타고 가면 높은 언덕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7년정도 살았던 ‘헤밍웨이 하우스’가 나옵니다. 그에게 퓰리처상(그는 기자 출신입니다)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노인과 바다’가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농장이 딸린 저택이었고 농장과 집을 관리해주는 사람(하인?)들이 살던 별채가 따로 있었습니다.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었고 야자수 숲 너머로 대서양이 한 눈에 펼쳐져 있는 명당이었습니다. 헤밍웨이가 엄청난 부자였던가 봅니다.

집 거실엔 각종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박제가 벽에 걸려져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아프리카에서 직접 사냥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주 독특한 취미가 아닐까요. 욕실 안에는 몸무게 저울이 있었고 벽에는 깨알같은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헤밍웨이는 과중한 체중 때문에 상당한 스테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는데 욕실 벽에 몸무게를 기록하면서 체중을 ‘관리’했다고 합니다. 낚시를 좋아하던 그가 고기를 잡던 배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었습니다.

아바나에서 헤밍웨이 자취를 온전히 밟는데만 하루가 족히 걸립니다. ‘노인과 바다’의 영감을 받았던 아바나 동쪽 어촌마을 ‘코히마르’의 경관은 일품이었습니다. 낚시대라도 있으면 부둣가에서 한번 던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남성 2인조 ‘길거리 밴드’가 헤밍웨이 동상 앞에서 ‘관타나메라’를 기타를 치며 흥겹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쿠바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관타라메라는 쿠바의 남쪽 끝 부근에 있는 시골마을 ‘콴타나모(미국의 수용소가 있는 곳)의 아가씨’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아가씨’. 쿠바가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쿠바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아바나에서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수년간 장기투숙한 아바나 시내의 암보스문도스 호텔, 그리고 칵테일 ‘모히토’를 마시러 즐겨 찾았던 술집 ‘플로리디따’에도 관광객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쿠바의 전통 술 럼에 설탕과 라임 즙, 민트 잎 등을 첨가한 모히토의 맛을 정말 상큼하고 깨끗했습니다. 가이드는 세계 다른 어떤 곳에서 모히토를 마셔도 쿠바 모히토와 같은 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쿠바산 설탕과 민트 잎이 그 비결이라고...

헤밍웨이하우스, 암보스문도스 호텔, 플로리디따 술집에는 비슷한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헤밍웨이와 피델 카스트로가 악수하거나 함께 있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낚시를 좋아했던 헤밍웨이가 주최한 낚시대회에 카스트로가 초빙돼 가장 큰 고기를 잡아 1등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둘 간의 친분은 두터웠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혁명후 쿠바에서 추방됐지만 카스트로는 그의 자취를 온전하게 보존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만약 카스트로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며 헤밍웨이의 유산을 모두 없애버렸더라면 쿠바는 아마도 관광자원의 절반이상을 잃어버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바나 중심부의 혁명광장을 둘러싸고 쿠바 정부청사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 중에서 쿠바 내무부 청사 빌딩 앞면에 쿠바 혁명의 영웅 체게바라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체 게바라는 쿠바 3페소 짜리 지폐의 초상인물이 들어갈 정도로 쿠바에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체 게바라 얼굴을 그려놓은 택시도 제법 있었습니다. 남미에서 온 관광객들은 체 게바라가 살았던 집을 꼭 방문한다고 합니다.

가이드에게 민간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라 까사(la casa)’로 안내했습니다. ‘국영 레스토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우선 빈 자리가 거의 없었고, 메뉴도 훨씬 다양했습니다. 가격은 메인요리 기준으로 7~11달러였습니다. 꽤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물론 쿠바 공무원들의 월급이 보통 35~40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지인들에는 ‘고급 식당’입니다.

사장은 30대 후반의 젊은 청년이었는데 1995년 부모님이 시작한 레스토랑을 몇 년전부터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고 투자금지가 풀리면 미국인 투자자들을 함께 2,3호점을 낼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미국의 엠바고가 풀리기를 20년 동안 기다려왔다. 쿠바는 바윗 속의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다. 미국과 수교하면 그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쿠바에서 돈을 벌려면 5년안에 투자해야 한다. 안그러면 늦을 것이다...”

식당을 나오면서 현지 가이드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장은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미국과 수교한다고 해서 쿠바 경제가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사장의 말은 다분히 희망이 섞인 것이라고 보면 된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5.1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