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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사랑, 세기의 불륜, 세기의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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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중세 스콜라 철학의 이단아로 평가받는 피에르 아벨라르(1079-1142)는 1079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태어나 기사직을 포기하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한 인물이다.
그는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중세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진보적 사상을 발전시켰고, 많은 신학적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공식화한 철학자다.

특히 칼을 포기한 대신 변증법과 논리학이라는 혀를 무기로 갈고 닦은 아벨라르는 그의 정적들의 표현대로 “천재지만, 언제나 남에게 깊은 아픔과 상처를 주는 천재”였다.

그는 당시 유명한 학자이던 샹포의 기욤에게 한수 배우겠다며 파리로 갔지만, 곧 공개논쟁에서 기욤을 묵사발내 버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욤에게 “너의 문제점에 관해서는(tua res agitur)”등의 직설법을 사용하며 격정적으로 몰아부친 것이다.

후대 중세시대 개인의 탄생의 징표로 평가받기도 하는 자서전 『나의 불행 이야기』에서 그는 “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수준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자만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아벨라르의 유창한 언변에 반한 청중들은 너도나도 아벨라르의 제자가 됐다. 아벨라르는 이들을 한동안 가르쳤지만 그 자리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어 그는 논리학이 아니라 신학을 배우겠다며 유명한 신학자 안셀무스를 찾아가 그마저도 논쟁에서 ‘탈탈 털어버리게’된다.

이처럼 당대의 대가와 석학들을 논쟁과 토론으로 무력화 시켜 나가면서 아벨라르는 유명 선생들과는 원수가 됐지만, 대신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됐다. 수많은 제자들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창창한 길을 가던 아벨라르에게 때마침 한 운명적인 여성이 다가오게 된다. 처음엔 제자로, 나중엔 연인으로 마치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모습으로 로맨스 또는 불륜이 시작된 것이다.

아벨라르가 39세 때 동료인 풀베르가 자기 조카로 17세였던 엘로이즈를 개인교습 해달라고 한 것이다. 석학과 명민한 여제자 사이의 교류는 지적인 관계로 끝나지 않았다. 22살 연하와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로 이어졌다.

이를 눈치 챈 풀베르는 배신감에 아벨라르를 내쫓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아이를 임신했고, 아벨라르는 일단 그녀를 자신의 누이 집으로 보내 그곳에서 아이를 낳게 했다. 아벨라르는 고심 끝에 엘로이즈에게 청혼하지만 엘로이즈는 “당신은 철학과 아내에게 똑같이 정성을 기울일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함께 거부한다.

엘로이즈의 이 같은 결정은 경솔하게 결혼해서 교회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아벨라르의 앞길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스승의 정부로 남겠다는 자기희생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중세사의 대가 브라이언 타이어니는 추측하기도 한다. 이에 아벨라르도 생각을 바꿔 엘로이즈를 수녀원에 보내고 그야말로 70년대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그녀와 관계를 완전히 끊으려 한다.

하지만 정말로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또 다시 벌어졌다. 이미 두 사람 사이 불륜은 소문이 나버렸고,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느낀 풀베르가 조카의 인생을 망친 아벨라르를 찾아 ‘19금’ 피의 복수를 해버린 것이다. 바로 아벨라르를 거세해 버린 것이다.

결국 아벨라르는 생드니 수도원에 은거하게 되고, 수녀가 된 옛 애인 엘로이즈와 플라톤적인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이와 함께 그는 여기저기서 다른 신학자와 교회 거물들과 논쟁을 계속하며 여생을 보내게 되고, 그와의 논쟁을 견디지 못한 정적들은 그를 수도원에 유폐시키기도 하고, 책을 불사르기도 하고, 교황에게서 파문 선고를 얻기도 하면서 그를 압박했다. 한번은 한 수도사가 아벨라르를 죽이려고 독을 넣은 음식을 우연히 먹고 대신 죽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아벨라르는 굽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갔고 물론 말싸움에선 한 번도 진적이 없었다. 대신 그 대가로 아벨라르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 수도원에서 저 수도원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관계가 사랑인지 불륜인지 모호한 뜨거운 관계에 대해서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가슴에 불을 지르는 촉매가 돼 왔다. 보통 아벨라르를 통해, 중세시대 개인에 대한 의식이 발현됐다고 보고 있고, 후대 루소가 이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통속소설 ‘신 엘로이즈’를 써서 프랑스혁명을 촉발하는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재벌2세 이혼녀와 유명 배우간 교제, 할리우드에 진출한 유부남 스타와 연예계 여성간 법정싸움 등 세인의 눈길을 끄는 연예사건이 연초부터 쏟아지고 있다. 모두 ‘로맨틱’한 분위기 일색은 아니지만, 후대에 큰 영감과 예술작품의 소재가 됐던 중세시대의 스캔들이 문득 떠올라 다시 적어봤다.(김동욱 증권부 기자)(끝)

***참고한 책***

아론 구레비치, 『개인주의의 등장』, 이현주 옮김, 새물결 2002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옮김, 까치 2002

브라이언 타이어니·시드니 페인터, 『서양 중세사-유럽의 형성과 발전』, 이연규 옮김, 집문당 1995

요셉 피퍼, 『중세 스콜라 철학-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와 갈등』, 김진태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3

주경철, 『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2005

Werner Beierwaltes(Hrsg.), 『Platonismus in der Philosophie des Mittelalters』,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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