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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가 바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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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한자에서 점치는 것을 의미하는 ‘복(卜)’자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것을 불에 그을렸을 때 나타나는 균열 모양을 형상화한 상형자라고한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케이틀리 같은 갑골문 전문가는 ‘卜’자가 거북이 등껍질에서 균열이 나타날 때 나는 소리인 ‘퍽,푹(puk·卜자의 古音으로 상정된다)’같은 소리의 의성어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 이같은 갈라진 균열 모양에서 연결되고 끊어진 선으로 구성된 『주역』의 64괘가 나왔다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점치는 행위는 고대 중국에서 중요한 일이었고, 또 일상적인 일이기도 했다.에드워드 쇼우네시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이 같은 점치는 행위의 용어와 고대 중국의 문학작품인 『시경』에 사용된 용어가 깊은 유사성·연관성이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일반화를 좀 세게 하자면 고대 문학작품의 대표격인『시경』이 점치는 내용과 관련이 깊은 『주역』처럼 쓰여졌다는 것이다.

동양 뿐 아니라 고대 서양에서도 ‘점치는’ 행위는 매우 일상적이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정치행위 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수많은 신탁의 사례가 등장하며, 역사의 흐름이 신탁 대로 진행됐다는 식의 서술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신탁은 페르시아 전쟁 때 나왔다. 기원전 480년 봄. 크세르세스 왕이 이끄는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하기 전 아테네인들은 델포이의 여사제 아리스토니케에게 가서 두개의 신탁을 받는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아테네인들이 접한 신탁은 매우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첫 번째 것은 “집과 도시를 버리고 땅 끝까지 도망쳐라”라는 최악의 점괘가 나온 것이었고, 두 번째 신탁은 “나무성벽에 의지하라”라는 애매모호한 내용의 예언이었다.

우선 아테네인들이 받아든 첫 번째 신탁은 전운이 감도든 당시 급박한 그리스인들의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가엾은 사람들아, 어찌하여 지금까지도 여기에 앉아 있느냐? 집도,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우뚝 솟은 성채도 버리고 땅 끝으로 도망쳐라.”라는 신탁의 내용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아테네인들에게 그나마 한줌 남아있던 희망마저도 한방에 날려버렸을 것이다.

이어지는 신탁의 내용도 아테네인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너희들의 도시는)머리도 몸도 성하지 못할 것이다. 다리도 손도, 그사이에 어떤 것도 남김없이 사라지리라. 도시는 사라지리라. 시리아의 전차를 몰고 달려오는 사나운 군신 아레스가 도시를 짓밟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성채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성채들도 파괴될 것이다. 많은 신전들도 사나운 불길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신전들은 지금 식은땀을 흘리면서 공포에 떨고있고, 천정으로부터 피할 길 없는 재앙을 알리는 검은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러니 그대들은 이 성소를 즉시 떠나라. 그리고 비탄에 잠기라”라며 암울하기 그지없는 운명을 예시한다.

이에 신탁을 듣기 위해 델포이를 방문했던 아테네의 신탁사절단은 극도로 좌절하게 된다. 비탄에 빠진 사절단을 보다 못한 델포이의 저명인사 안드로볼로스의 아들 티몬이 “탄원자의 표지인 올리브 가지를 손에 들고 성소에 다시 들어가서 위안이 되는 신탁을 내려 달랠 것을 부탁해보라”고 귀띔하게 된다. 이에 사절단은 “위안이 되는 신탁이 안 나오면 성소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죽을 때 까지 이곳에 머물겠다”고 떼를 쓰게 된다.

이에 두 번째 신탁이 내려지게 되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 신탁보다 다소 완화된 데다 듣는 사람의 해석의 여지가 훨씬 많아진 신탁이 나온 것이다. 신탁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는데...

“케크롭스 언덕(아크로폴리스)과 성스러운 키타이론의 계곡 사이에 있는 것들이 모두 적의 손에 함락된다 하여도, 멀리 바라보시는 제우스께서 아테나에게 나무성벽만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 주어서, 너희와 너희 자식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너희들은 육로로 쳐들어오는 침입자들의 대규모 기병과 보병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선 안된다. 등을 돌리고 퇴각하라. 조만간 너희가 그들을 맞서 반격할 날이 올 것이다. 오오 성스런 살라미스여, 어디선가 데메테르가 파종할 때 혹은 추수할 때, 그대는 여인들의 자식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예전보다 긍정적인 측면도 많아진데다 멸망하게 되는 ‘여인들의 자식들’이 그리스인지, 페르시아인지도 애매모호한 그야말로 전형적인 점쟁이 버전의 답안이 튀어나온 것이다.

결국 이 애매모호한 신탁을 두고 아테네의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는 ‘나무성벽’이 함대를 의미한다고 해석했고,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해 B.C.480년 9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기에 이른다.(신탁에 나온 살라미스가 너무나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한 꼴이 되니 이는 이후 조작설의 주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침입을 물리칠 수 있었을 뿐 아니라,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저서 『역사』곳곳에서 ‘신탁’의 필연성을 강조했던 헤로도토스는 이 같은 아테네인들의 신탁해석 행보에 대해 “아테네인들이 비관적인 신탁을 받고서도 그리스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적과 맞서 싸워 격퇴시켰다”고 높게 평가했다.

육각운(六脚韻)운율의 운문시로 각각 12행으로 구성된 델포이의 신탁은 전문이 매우 애매한 표현으로 장황하게 구성돼 있는데. 일각에선 페르시아전쟁이 끝난 지 한세대 이상이 지난 B.C.440-430년경 『역사』를 기술한 헤로도토스가 당시 떠돌던 민담과 전설을 토대로 문학형태로 각색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일부에선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사후적으로 창조된 ‘만들어진 신화’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테미스토클레스가 델포이 사제들을 매수해 살라미스라는 단어를 삽입하거나 조작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고 한다.

연말 연초를 맞이해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몰리며 점집이 호황이지 않을까 싶다. 시대도 다르고, 사건의 경중도 다르지만 불확실한 미래 앞에선 점쟁이의 ‘예언’에 기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나무성벽’예언을 현실로 만든 것은 테미스토클레스의 판단력과 결단력이었던 것처럼 운명을 바꾸고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인 듯도 하다는 교과서적인 해석도 해본다. 양의 해에 모든 분에게 좋은일만 생기시길 바란다.(김동욱 증권부 기자)

***참고한 책***

에드워드 L.쇼우네시, ‘이미지 불러일으키기(興):고대 중국 역(易)과 시(詩)의 상관성’, 심재훈 편, 『화이부동의 동아시아사』, 푸른역사 2012 中

헤로도토스, 『역사』,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2

변정심, ‘살라미스 해전에서 ‘나무성벽’ 신탁의 역할’, 『역사와 경계 59』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