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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자기소개서 경영대회' 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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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희 한경 잡앤조이 기자) 방학을 맞은 서울 동국대 캠퍼스. 교정에는 학생 대신 흰 눈만 가득 쌓여 있었다. 코끼리상을 지나 취업센터가 있는 본관으로 들어서자 학생들이 가득했다. 이들은 한 손에는 이력서를, 다른 한 손에는 노트를 든 채 속속 강연장으로 입장했다.

(이도희 한경 잡앤조이 기자)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23일 오후 3시, 서울 동국대 본관 중강당에서 ‘자소서 경연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동국대 취업센터는 겨울방학 취업 프로그램 ‘특별 공채 대비반’의 일환으로 이번 경연대회를 기획했다.

경연대회에 모인 총 93장의 이력서 중 수상의 기회를 얻은 건 단 8장. 자소서 심사를 맡은 동국대 취업센터의 연구위원과 취업컨설턴트 등 위원들은 이번 자소서 평가의 핵심 기준으로 ‘직무역량 및 관련 경험’을 꼽았다.

학교가 제시한 자소서의 문항은 총 4개. 모두 ‘직무역량’을 집중적으로 묻는 문제들이다. 심사위원들 모두 ‘내년에 직무역량중심 채용이 강화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경연대회 자소서 문항]
1.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나 난관에 부딪힌 경험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2. 열정을 가지고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본인의 사례를 작성해 주십시오.
3. 우리 회사와 해당분야에 지원하는 동기에 대해 작성해 주십시오.
4. 여러 팀 활동 수행 경험 중 팀웍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팀 활동에 대해 작성해 주십시오.

학교는 심사 위원 중 취업컨설턴트를 초청해 실제 접수된 자소서를 공개적으로 첨삭해주는 시간도 마련했다. 이날 특강에는 자소서를 제출했던 참여자 외에도 취업에 관심이 많은 동국대 출신 취준생 140명이 참가했다.

강연을 맡은 강원준 컨설턴트(HR컨설팅 대표)는 “90여장의 자소서를 읽으며 공통적으로 느낀 아쉬움은 직무역량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경험을 통해 역량을 어필하되 특별한 경험을 써야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학교 측은 경연대회 수상자에게는 경품도 지급했다. 1등은 아이패드, 2등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물했고 3등에게도 문화상품권을 제공했다.

# 경험을 단순히 나열만 해서는 안돼

“학생의 장점은 뭐예요?” 강 컨설턴트가 앞에 앉은 한 학생에게 물었다. “...빨리 배우는 거요” “그걸 어떻게 믿죠?” “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의 질문에 학생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강 컨설턴트는 곧바로 해답을 제시했다. 근거자료를 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이번 경연대회에 접수됐던 한 자소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사례1)
‘평범하고 행복한 가장의 장남으로서...’
‘가정의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라 전출이 많았고...’
‘가정에 닥친 어려움에 좌절하기보다는 저에게 주어진 생활과 그 역할 내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와 현실적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자소서를 다 읽은 강 컨설턴트는 곧바로 독설을 쏟아냈다. 그는 “이 자소서의 가장 큰 문제는 안 좋은 환경을 쓰는 데에 너무 많이 투자했다는 것”이라며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남달랐는지 또 그 역량이 현재도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언급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례2)
‘스리랑카에 IT기술과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OO기업 IT봉사단으로 선발되어 소통과 배려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 주어진 임무인 통역을 열심히 준비했지만 출국 직전 파견 국가가 변경돼 공부한 내용이 무용지물이 됐다. 하지만 소통이라는 다른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두 번째 자소서에 대해 강원준 컨설턴트는 ‘배우는 것보다는 역량을 발휘하는 사례’가 더 좋다고 조언했다. 이 자소서의 경우 지원자가 소통하는 사람이라서 봉사단에서 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쓰는 편이 낫다는 것.

그는 “스리랑카를 가려다 못 갔다는 이야기는 전혀 중요치 않다”며 “기타 사건은 짧게 쓰되 파견 후 얼마나 현지인들과 잘 소통했는지, 이 역량을 입사 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장단점은 한 가지 맥락에서 생각해야

사례3)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중국으로 유학. 책임감이 커 빨리 중국어를 배우고 낯선 환경에 적응했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전체 문장을 읽자마자 강 컨설턴트는 자소서를 쓴 학생에게 ‘이 답안을 왜 썼느냐’고 물었다. 학생의 대답은 적응력이라는 장점과 낯가리는 단점을 한 번에 넣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

“적응력이 있는데 낯을 가린다고요? 앞뒤가 안 맞아요. 답에 일관성이 있어야 해요. 특히 장단점을 언급할 때 이 점을 많이 놓쳐요. 만약 적응력을 쓰고 싶었다면 누구랑 갔는지를 전부 지우세요. 대신 갔더니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걸 극복하기 위해 어떤 것을 했는지를 보여줘야 해요.”

강원준 컨설턴트는 이어 “자소서를 다 쓴 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럼 자연스럽게 주제와 관련 없는 내용은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컨설턴트는 강연을 마치며 ‘남들과 다른, 기존과 다른’이라는 문장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기업은 남들과 다른 경험을 묻지는 않지만 남들과 다른 태도는 물어요. 무조건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지원자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 경험이었는지를 봐요. 참신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기존과 다른 방식을 원해요. 이 세 문장을 이해하는 순간 여러분은 자소서의 어떤 독특한 문장에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원준 컨설턴트가 추가로 조언한 ‘피해야 할 단어 및 문장’]

- 또한 : 하나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면 관련 없는 요소들을 늘어놓은 건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

- 아니었나 싶다 : 확신이 없는 표현은 좋지 않다. 지원자 스스로 기술한 내용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 본격 공부에 임했다, 더 많은 시간 노력해야 : 단어끼리 이어지지 않는다. 글자 수를 맞추려고 급히 글자를 줄이다보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니 주의하자. (끝)

오늘의 신문 - 2024.05.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