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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가 중국에서 뜨는 두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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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 중국전문기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핀테크(fintech)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터넷은행 전자결제대행(PG) P2P(peer to peer,개인 대 개인)대출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핀테크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부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해 중국에선 인터넷금융이 화두가 됐습니다. 도처에서 세미나가 열리고 관련 책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융에서는 아직도 낙후됐다는 평을 듣는 중국입니다. 그런 곳에서 핀테크가 급부상한 배경은 뭘까요?

핀테크의 뿌리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 있습니다. 1995년 미국에서 설립된 SFNB는 세계 1호 인터넷은행입니다. 1998년 페이팔은 전자결제대형(PG)의 시조가 됩니다. 특히 페이팔은 이듬해인 1999년 페이팔에 잔액으로 남아있던 자투리 돈을 모아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를 운용합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MMF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중단합니다.

2005년 영국의 조파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P2P 대출업을 시작합니다.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서비스에서 이용됐던 인터넷 플랫폼이 영화 컨텐츠를 공유하는 무대가 된데 이어 이젠 대출자금 교류를 위한 신용정보 공유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겁니다.

흥미로운 건 이 핀테크가 중국에서 활짝 만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올해 설립허가를 내준 5개 민영은행 중 알리바바와 텅쉰(텐센트)이 각각 주도한 컨소시엄이 세우려는 은행도 인터넷전문은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인터넷 전문 은행 도입을 검토하는 수준입니다.

알리페이는 알리바바가 페이팔보다 5년 늦은 2004년 시작한 온라인쇼핑 결제용 전자결제대행 서비스지만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습니다. 2013년 말로 회원수가 3억명을 넘었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알리페이 이용 건수는 1억8800만건. 이가운데 모바일 결제 대행은 4518만건에 이릅니다.

올 2분기부터는 모바일 결제에서도 세계 1위 기업이 됐다고 중국 언론은 전합니다. 작년 6월 출시한 위어바오는 페이팔이 1999년 만든 MMF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1년만에 자산규모 중국 1위, 세계 4위의 MMF로 성장했습니다. 위어바오 가입자는 2월말 현재 81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텅쉰 바이두도 위어바오 유형의 금융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을 정도입니다.

P2P 대출은 중국에서 빅뱅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중국에서 1호 P2P 대출업체는 파이파이다이입니다. 중국 P2P대출 조사업체인 왕다이즈지아에 따르면 2009년 9개에 머물던 P2P 대출 업체수는 지난해말 800개에 이어 11월말 현재 1540개사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머니옥션 팝펀딩 오퍼튠 정도가 P2P 대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왕다이즈지아에 따르면 중국 P2P 대출 시장은 지난해 1058억 위안으로 성장했습니다. 2012년(212억위안)의 5배 수준입니다. 올들어선 11월말까지 2092억 위안으로 치솟았습니다. 이 수치는 아이리서치의 통계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아이리서치는 지난해 중국의 P2P 대출 시장 규모가 전년의 3배 수준인 680억 위안으로 성장했다고 전합니다.

중국에선 벤처캐피털은 물론 정보기술(IT) 기업도 P2P 대출 업체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지무허즈가 지난 9월 37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할 때 샤오미와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 등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기존 제도권 금융의 진출이 활발합니다. 2012년 핑안보험그룹이 뛰어든데 이어 지난해 자오상은행, 올들어선 광파증권 팡정증권 중신기금 등이 자회사 등을 통해 P2P 플랫폼을 세웠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은행들이 방관자적 입장으로 P2P 대출 시장을 지켜보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물론 P2P 대출 시장의 폭발적 성장 뒤의 그림자도 짙습니다. 중국에선 P2P 플랫폼 업체가 난립하면서 폐쇄되는 플랫폼이 크게 늘고 있는 겁니다. 지난 9월 왕잉텐샤가 문을 닫은 게 대표적입니다. 왕다이즈지자에 따르면 이처럼 문을 닫는 등 문제가 생긴 P2P 대출 업체가 2012년 6개, 2013년 76개에 이어 올들어선 지난 18일까지 322개로 급증했습니다.

특히 이달 들어 18일까지만 47개사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입니다. 중국 언론은 P2P 대출 업계가 작년말에 이어 또 다시 연쇄부도에 직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신용중개를 하지 말고 정보만 중개할 것을 거듭 지시하지만 현장에선 잘 먹히지 않는 상황입니다. 은감위가 P2P 대출 리스크를 경고한 건 2011년입니다. 올들어서도 거듭 공개 경고에 나서고 있지만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중국 증시가 뛰면서 주식투자 자금 대출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불법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유사수신행위를 하거나 돈세탁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영세기업과 빈곤층에 자금을 대주는 미소금융의 대안으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중국에서 핀테크가 꽃을 피우고 있을까요? 저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우샤오치우 런민대 금융증권소장은 “기존 전통금융이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전통적 제도권 금융의 수준이 낙후할수록 오히려 인터넷금융이 꽃을 피울 가능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 제도권 금융도 선진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인터넷금융도 부진합니다.

개혁실험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을 보이는 당국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이 올해 설립인가를 내준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한 민영은행의 주체에는 전통적인 제조업체도 있습니다. 중국이라고 금산분리에 대한 우려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일단 해보자는 개혁 의지가 더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P2P 대출은 중국에서 제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큰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일단 막아놓고, 완전한 주변 여건을 갖춰놓고 시작하자는 건 촌각을 다투며 경쟁하는 글로벌 시대에서 너무 여유 있어 보입니다. 1990년 상하이 증시 개장 이후 증시 도입을 놓고 논란이 다시 일었을 때 덩샤오핑은 “일단 해보자. 잘못되면 그 때 중단하면 된다”는 식의 개혁 의지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중국에서 핀테크가 활성화되는 이유는 인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푼돈도 많이 모으면 태산을 만들 수 있지요. 자투리 돈을 받아서 세계적인 MMF로 성장한 위어바오가 대표적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연결해주는 게 인터넷의 강점이지요. 거대 인구가 흩어져있을 때는 존재하기 힘든 시장이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블루오션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겁니다. 핀테크가 잘 자랄 토양이 된 겁니다.

예전엔 13억 인구에 나무젓가락 한쌍만 팔아도 대박이라고 얘기하면 사실상 쪼개진 중국 시장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란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진짜 대박이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당국의 개혁에 대한 유연한 태도와 거대한 인구가 중국 핀테크 활력의 원천인 셈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