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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해킹으로 다시 살펴본 90년 전 레닌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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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자칭 ‘원전반대그룹’이란 단체가 한국수력원자력을 해킹해 원자력발전소 도면 등 주요 자료를 공개하거나 추가 폭로 협박을 하고 있다. 국가 주요 시설의 자료가 해킹됐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전력시설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다. 한수원이 ‘원전반대그룹’ 주장대로 원전가동을 중단한다면 한겨울 대규모 전력난도 피할 수 없다.

최근에는 풍부한 전력이 당연시되고, 일반인의 주요 관심거리가 아니지만 사실 현대사회에서 전력은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 직후 소련에선 아예 전력문제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권력에다 전 국가의 전기화를 더한 것이다.(Коммунизм-это есть Советская власть плюс электрификация всей страны. communism equals socialism plus electricity.)”

러시아 혁명의 태두 블라디미르 레닌은 위와 같은 말로 전기·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표어가 국가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혁명을 통해 갓 집권한 소련 공산당은 1920년대까지 그 기반이 취약했다. 국가 경제는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1920년의 공업생산량은 1차 세계대전 전인 1913년의 14%에 지나지 않았다. 1920년 6월 당시 전체 기관차의 60%가 운행이 불가능했다. 1923년 소련의 평균 열차운행 속도는 시속 10마일 이하였고, 열차 이용객 수는 1913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많은 공장이 원자재와 연료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러시아의 주요 탄전은 가동 중단 상태였고 공장 시설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시 대기업의 생산량은 전쟁전의 18% 수준에 불과했다. 나라 곳곳에서 기아와 질병이 만연했고, 혁명의 결과를 되돌리기 위한 백군과 외국 간섭군의 위협도 여전했다.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소련정부는 1921년 2월에 ‘고엘로(ГОЭЛРО·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комиссия по электрификации России)’라는 약칭으로 불린 러시아 전력화 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구에서 ‘고엘로 계획(план ГОЭЛРО)’이라는 전력화 사업 계획을 마련했다. 이는 소련 경제를 회복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첫 5개년 계획이었고, 이후 소련의 계획경제 당국인 '고스플란'(Госплан)의 5개년 계획의 원형이 됐다.

G.M.크르지쟈놉스키의 지휘 하에 200여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고엘로에 참여했다. 고엘로는 붕괴한 경제를 부흥시키고 새로운 기술의 토대 위에서 국민경제를 재생시키고자 했다. 1920년 말에 고엘로는 ‘러시아 전기화 계획(RSFSR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8차 공산당대회와 정부 승인을 거쳐 1921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 계획은 러시아를 완전히 전기화 시키는 것에 기반해 소련 사회의 경제구조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첨단 현대기술을 바탕으로 산업기반을 육성해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이를 바탕으로 낙후되고 후진적인 농촌을 가난과 무시,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소련 사회의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1926년부터 1936년 사이에 소련에서 도시 인구는 2600만 명에서 56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도시 노동자 수도 1927~1928년부터 1932년 사이에 1130만명에서 2280만명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변화에는 낙후됐으면서도 러시아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후진 농촌사회는 혁명세력의 계획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튈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고, 사회주의 혁명의 반동기반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 했다.

이에 따라 소련 전역이 8개 지역으로 구분됐다. 10개의 수력발전시설을 포함한 30개의 지역 발전소 네트워크와 전기력에 기반을 둔 다수의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했다. 1913년 연간 19억kWh에 불과했던 전력 생산량을 88억kWh 수준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소련 내 교통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도 추진됐다. 낡은 철도망은 신규 철도망으로 교체됐고, 철도망도 복잡하게 깔렸다. 볼가강과 돈강을 연결하는 운하도 건설됐다.

전력 생산량은 어떻게든 목표치를 채워 1931년에 88억kWh 수준에 도달했고, 5개년 계획이 끝나는 1932년에는 135억kWh를 달성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휘말릴 때인 1940년에는 연 480억kWh까지 생산량을 늘렸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계획대로 진척되진 못했다. 소련의 국가 선전기구가 1931년에 당초 계획을 원칙적으로 달성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1930년대에 단지 3개의 수력발전소만이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이는 당초 계획했던 10개의 수력발전소에는 크게 못 미치는 성과였다. (김동욱 증권부 기자)


***참고한 책과 사이트***

헬무트 알트리히터, 『소련 소사 1917-1991』, 최대희 옮김, 창작과 비평사 1997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Geoffrey Hosking,『Russia and the Russians-A History』, Harvard University Press 2001

Mark Mazower,『Dark Continent- europe's twentieth century』, Vintage Books 2000

В. П. Данилов,‘Возникновение и распад советской системы:социальные истоки, социальные последствия’, 서울대러시아연구소, 『러시아연구』 제 10권 제 1호 中,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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