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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 숨은 마약사범을 네덜란드에서 잡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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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람 지식사회부 기자) 배우 전도연씨가 주연한 영화 ‘집으로 가는길’ 속 범인의 실제 모델인 해외 도피 마약 사범 전모씨(51)가 10년만에 해외에서 붙잡혀 지난 17일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었던 만큼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죠.

그는 “가나에서 네덜란드로 보석 원석을 운반해달라”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모은 뒤 실제로는 48.5kg 분량의 코카인을 운반하게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피해자들이 해외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검찰은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그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 항공기에서 체포해 한국으로 압송했지요.

전씨는 그동안 남미 수리남에서 도피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네덜란드에서 그를 붙잡은 배경은 뭘까요? 바로 체포영장의 효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체포영장의 효력은 피의자를 체포한 시점부터 48시간입니다. 48시간이 지나기 전에 면밀히 조사해서 사후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피의자를 풀어줘야 한다는 말이지요. 체포영장의 효력은 국내 영토에서만 적용되는데, 우리나라 항공사가 운영하는 국적기만 국내 영토로 분류됩니다.

당초 전씨는 지난 14일 수리남에서 발견돼 수리남 현지 경찰에 붙잡혔지만, 직항의 국적기가 가지 않는 수리남 영토에서는 그를 체포하기가 어려웠던 거지요. 국적기 안에서 체포를 하더라도 환승 시간 등을 고려하면 48시간 내에 조사 및 구속 영장 청구에 차질을 빚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전씨를 네덜란드로 가게 한 뒤 한국을 직항으로 오가는 대한항공 항공기 안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했습니다. 집행한 시점부터 48시간은 영장의 효력이 있으니 비행기로 오가는 시간을 빼더라도 하루 넘게 조사할 시간은 남겨둘 수 있었지요.

국적기에서 범죄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한 것은 과거에도 왕왕 있던 일입니다. BBK 사건의 김경준씨도 미국 LA에서 출발하는 국적기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죠. 국적기로 압송되는 피의자들은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머무를까요? 범죄인 호송 절차는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해져 있어 일반 탑승객과는 달리 엄격한 제한이 가해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내 구석 자리에 호송 수사관들과 함께 앉아야 하며, 기내 소란이나 도주를 막기 위해 통로나 출입구 쪽은 앉을 수 없습니다. 또 주방용구 등을 흉기로 사용할 가능성을 고려해 주방쪽과도 떨어져 있게 돼 있습니다.

기내식은 일반 승객들과 똑같이 제공되지만 주류는 제공되지 않고, 철제로 만든 식기구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반 승객들에 눈에 띄지 않도록 제일 먼저 타고, 가장 마지막에 내리는 것도 특징이네요. 피의자 국내 송환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같이 탔던 탑승객들은 다소 섬뜩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