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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도 노출을 포기할수 없었던 여배우들의 '대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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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 읽기) 아테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선 이웃 스파르타의 처녀들을 비하해 ‘맨살의 넓적다리’라고 부르곤 했다. 아테네인들에게 스파르타 소녀들은 “허벅지를 보여주는 애들”로 정평이 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 여인들은 온갖 무절제 속에서 마음대로 산다”고 낮춰봤다. 시인 유리피데스는 “젊은 남자들과 함께 집을 나가는 처녀들, 맨살의 넓적다리를 드러내고, 치마는 벌어지네”라고 노래 부르며 스파르타 소녀들을 한껏 폄하했다.

사실 스파르타 미혼 여자들이 입는 웃옷은 옆이 째진 채 꿰매지 않아 걸음을 걸을 때 넓적다리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고 한다. 이 같은 모습을 본 소포클레스는 “저 젊은 처녀, 튜닉은 아직 꿰매지 않아, 눈부신 넓적다리를 맨살로 드러내네”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 같은 스파르타 처녀들의 도발적 의상은 그리스 세계에서 놀라움과 혐오감을 주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아테네의 처녀들이 발밑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었던 반면, 스파르타 여인들은 오늘날 미니스커트가 연상되는 짧은 치마를 입고 말처럼 뛰어다녔다.

사실 남성에 종속적인 삶을 산 아테네 여인들과 대조적으로 스파르타 소녀들은 소년들과 유사한 교육을 받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강하고 독립심 있는 존재로 성장했다. 여성이 토지를 비롯해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었다. 또 머리에서 발끝까지 기름을 뒤집어쓰고 축제에 참여하거나 달리기를 하는 스파르타 처녀들의 모습은 다른 보수적인 도시국가에선 실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보였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스파르타 여인들의 넓적다리를 드러내는 짧은 의상도 축제나 운동 시 스파르타 여인들의 복장에 비하면 매우 ‘점잖은’ 것이었다. 황소를 제어할 만큼 강한 육체를 지니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스파르타 소녀들은 달리기, 레슬링, 원반 던지기, 투창 시합을 벌였고 때론 벌거벗은 채 허벅지를 보이면서 소년들과 함께 달렸다. 심지어 레슬링을 하며 힘을 겨뤘다고 한다.

특히 춤추고 노래하며 행진하는 종교축제 때는 발가벗고 ‘올 누드’로 참여했다고 각종 기록들은 전한다. 스파르타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운동경기에서 스파르타 소녀들이 ‘홀딱 벗고’경기에 임했다”고 앞다퉈 전하고 있는 것이다. 후대의 플루타르코스도 “스파르타 처녀들이 분명 나체로 참가했다”고 단언했다.

소녀들이 정말로 완전히 나체로 종교 축제에 참여했을지, 아니면 속이 보이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참여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제례나 운동회에서 스파르타 처녀들이 자신이 얼마나 건강한 아이들을 낳을 수 있는지 남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남성들은 종교 축제에 나체로 참가한 처녀들의 몸매를 보고 결혼상대를 골랐을 것으로 여겨진다는 설명이다. 스파르타 여성들은 우생학적·군사적 견지에서 훈련을 받았기에 아이를 낳고 난 이후나 가임연령이 지나면 신체단련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됐다고 한다.

여기에 플라톤은 “도덕이 해이해지고 사치가 심해지자 스파르타인들이 손님 앞에서 소녀들의 옷을 벗기는 관습이 생겼다”라고 전하는데. 이에 대해 허승일 전 서울대 교수는 소녀들의 건강미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추론하기도 한다.

17일 저녁 영하 17도의 강추위 속에서 열린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선보인 여배우들의 과감한 노출의상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여름이 연상될 정도로 가슴 노출 정도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일부에선 “과감한 수준을 지나쳐 과도하다”며 노출 마케팅일 뿐이라며 부정적인 평을 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고대 스파르타에선 강한 여권을 지닌 처녀들이 자신을 마케팅하기 위해 과감하게 노출했다고 하는데, 과연 후대에는 오늘날 한국 여배우들의 노출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끝)

*** 참고한 책 ***

허승일, 스파르타 교육과 시민생활, 삼영사 1998
Paul Cartledge,The Spartans-An Epic History,Macmillian 2003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