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선 ‘오리 부츠(duck boots)’가 대유행이라고 합니다. 창립 102주년을 맞은 부츠 회사 ‘L.L.빈’이 만든 제품인데요. 연평균 10만 켤레 정도 판매돼온 이 부츠는 주로 벌목꾼이나 농부들이 신는, ‘농촌용 신발’이었습니다. 도심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다소 투박한 디자인이었다는 뜻이죠.
올해 갑자기 ‘오리 부츠’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L.L.빈 관계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지난 3년새 매출이 4배 이상 늘어 올해만 벌써 45만 켤레를 팔았다고 합니다. 이번 추수감사절 쇼핑 시즌을 맞아 6만건의 주문이 추가로 들어왔는데 물건이 모자라 아직 배송을 못해준 상태입니다. 맥 맥키버 L.L.빈 대변인은 “주문 물량을 맞추려고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도저히 공급이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말했습니다.
L.L빈은 2년 전 미국 주요 도시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지루하고 투박한 디자인이긴 하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데일리 룩’에 잘 어울린다는 이유였습니다. 터틀넥 니트에 청바지, 양말을 살짝 부츠 위로 빼낸 스타일은 미국 대학가에서 대유행을 했습니다.
100년 묵은 브랜드의 인기가 단지 대학생들의 안목 때문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100% 수작업 부츠의 진가’를 알아봤기 때문인데요. 대량 생산, 패스트 패션에 반대되는 회중시계, 수제 위스키 등의 몸값이 오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GQ, 에스콰이어 등 패션 잡지에서 최근 ‘오리 부츠’를 앞다퉈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L.L.빈은 올해 100명의 부츠 제작자를 새로 고용했습니다. ‘오리 부츠’를 만들려면 최소 6개월의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는데요. 지금은 500명의 부츠 장인들이 밤낮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합니다.
신발은 다른 패션 아이템에 비해 유행에 아주 민감합니다. 한때 밀리언셀러였던 ‘허쉬 파피’, 2001년 오프라 윈프리가 신은 뒤 전 세계적 유행 상품이 된 어그부츠처럼 ‘오리 부츠’도 곧 포화 상태를 걱정해야 할 때가 오겠죠. 하지만 L.L.빈의 관계자들은 자신만만합니다. 보통 패션의 유행이 도시에서 시골로 퍼지게 마련이지만 ‘오리 부츠’는 반대로 시골에서 도시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젊은이들이 변덕을 부려도 100년의 명맥을 지켜온 ‘오리 부츠’의 생명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