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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프로야구판 미생 '그라제니'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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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문화스포츠부 기자) 최근 tvN 드라마 '미생'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동안 ‘응답하라 1994’ 같이 화제가 된 케이블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생'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담하게 그려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권력 암투’, ‘연애’, ‘출생의 비밀’ 같은 요소가 없어 시청자들이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봤을 법한 직장 내 에피소드들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만화계에서는 한 일본 만화가 야구팬들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라제니’라는 만화입니다. 미생 이야기를 하다가 웬 야구 만화냐고요? 이 만화의 별명이 ‘야구판 미생’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본다 나츠노스케는 도쿄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 진구 스파이더스(임창용, 이혜천이 활동했던 센트럴리그의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모델)의 고졸 8년차 중간계투 투수입니다. 임무는 주로 좌타자를 막아내는 '원 포인트 릴리프'이고 연봉은 1800만엔입니다. 일본 직장인 평균 연봉에 비하면 엄청 높은 액수지만 프로야구 8년차 연봉으로는 그저 그런 수준이지요.

본다는 불펜에서 대기하다가 타자 한두 명을 막아내는 것이 고작입니다. 팀이 지고 있다면 경기에 얼굴을 비출 수도 없습니다. 본다의 주특기는 선수 연봉 외우기. 상대 타자 연봉이 10엔이라도 적으면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그 반대면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상대와의 연봉 격차가 너무 심하게 나면 오히려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 삼진을 잡아내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지요.

야구만화에서는 흔히 주인공이 마구를 던지거나 한 시즌 홈런 50개를 우습게 날립니다. 그라제니에는 이런 초능력 캐릭터가 없습니다. 그 대신 일본 프로야구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선수, 코칭 스태프, 구단 프런트, 해설위원, 기자들의 모습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위기 상황에 등판해 좋은 결과를 내면 이듬해 연봉협상에 유리한 요소를 얻었다고 좋아합니다. 그라제니라는 제목도 ‘그라운드에는 돈이 묻혀 있다’는 주인공의 좌우명에서 따온 것이지요.

팀의 주전 포수가 부상으로 잠깐 2군에 내려간 사이 만년 2군 선수가 4번 타자로 성장하고, 국내에선 불러주는 팀이 없어 은퇴를 고려하다 대만에서 제2의 삶을 이어가는 선수, 이도저도 할 수 없어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스포트라이트 뒤의 프로야구는 마냥 화려한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요새 전력 보강과 계약이 한창입니다. 한 해에 수억원을 버는 스타도 있지만 연봉 2000만원 수준의 신고선수도 있습니다. 높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유망주도 몇 년 안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면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수인 데다 스타들도 부상을 당하면 기량이 급격히 떨어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집니다.

어찌보면 프로야구판도 냉혹한 미생의 세계라고 볼 수 있지요. 그라제니. 야구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프로야구의 세계가 궁금한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9.2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