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좋은 자리는 '전리품'이란 인식을 제도화한 인물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김동욱 증권부 기자) 흔히 ‘엽관제(獵官制)’라는 말로 번역되는 ‘spoils system’은 19세기 초 미국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잭슨 시기에 정착됐다. 엽관제란 단어 자체는 민주당 소속으로 뉴욕 주 상원의원이었던 윌리엄 마시가 1832년 “전리품은 승자에 귀속된다(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라고 말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마치 전쟁에서 전리품을 노략질하듯 선거에 승리한 측이 국가의 공직을 전리품처럼 나눠 갖는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엽관제라는 용어를 정착시킨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당대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자수성가 ‘성공신화’의 대표적 상징처럼 여겨졌던 인물이다. ‘대빵 왕(King Mob)’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잭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싸움꾼이었고, 전문 말 거래꾼(horse trader)이었고, 땅 투기꾼이었고 서부 개척지의 변호사였다.”

따라서 거친 서부 개척 분위기의 새로운 상징 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당대인들은 그에 대해 “가장 시끄럽고 주변사람에 대해 꾸지람을 많이 하며, 싸움닭인 데다 경마와 카드게임을 즐겨하는 남에게 해를 종종 끼치는 말썽꾸러기 같은 인물”로 묘사하곤 했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뒤 가정부로 살림을 꾸려나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잭슨은 자기중심적으로 완고하면서도 투지가 있고, 성미가 급하며, 남을 쉽게 미워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각종 기록에선 묘사된다.

1829년 대통령 취임 당시 잭슨은 “정치 악한들을 몰아내고 국민의 통치를 확립하겠다”며 개혁을 표방해 적잖은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이 같은 주장은 잭슨이 주장한 공직 로테이션제의 변론 이데올로기로 계속 사용된 것이기도 했다.

“공직에 한사람이 너무 오래 있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며 공직 로테이션 제를 주장한 잭슨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새로 선출된 정부에 의해 주요 공직을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당시엔 신선해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잭슨 이후 미국사회에서 정착된 좋게 말해 로테이션 시스템은 그 달콤한 주장처럼 긍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처럼 잭슨 대통령이 (후임들에 비해) 유독 엽관제가 심했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잭슨에게 엽관제라는 새로운 부패시스템을 정착시켰다는 오명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잭슨의 대통령 임기 첫해에만 이미 전체 공직의 9% 가까이가 잭슨 편에 섰던 ‘냄새나는’ 패거리 인물들로 채워졌다. 잭슨의 임기 전체를 보면 전체 공직의 20% 가까이가 잭슨 편에 섰던 정치꾼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당시 미국 연방정부의 대표적 행정조직이었던 우체국 지국 중 423개소가 단번에 우체국장이 교체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그리고 이 같은 폐단은 잭슨 이후 미국 정치사에서 20세기 초까지 성행했고, 지금도 그 편린이 남아있는 상태다.

권력의 떡고물을 바랬던 잭슨 지지자들은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노골적으로 공직 사냥에 적극 나섰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 “공직의 민주화”라고 변론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대가를 바라고 잭슨을 지지했던 인물들이 자기몫 챙기기에 나섰던 것이라고 역사는 비판한다.

이런 상황에 재를 더 뿌린 것은 잭슨 행정부의 소통부재였다. 잭슨은 공식적인 내각에 거의 의존하는 바가 없었고, ‘주방 내각’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소수의 인사들과만 의견을 공유하며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됐다.

당시 잭슨 정권의 실세는 국무장관이었던 마틴 반 뷰렌과 켄터키 주 출신 아모스 캔달, 더프 그린 유나이티드텔레그래프 에디터 등 소수에 불과했다. 이들 ‘끼리끼리’소수만의 의견으로 국정이 운영되면서 점차 일반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과 판단들이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잭슨 행정부의 내각은 출범 초기부터 뉴욕의 반 뷰렌파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부통령이었던 캘혼파로 나뉘어져 지속적으로 마찰음을 내며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최근 초대형 금융기관의 수장 임명을 놓고 ‘낙하산’ ‘사전 낙점’ 논란이 뜨겁다. ‘관피아’ ‘정피아’에 이어 특정 학맥과 관련된 별칭 등도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의 배후에 금융권의 주요 수장직을 '정치적 전리품'으로 여기는 측의 '작업'이 아닐까 하는 세간의 의구심도 강하다. 끌어내리고 차지하려는 수작이라는 얘기다. 후진적인 인사관행과 잡음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모습이 여간 볼썽 사나운 것이 아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2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