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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공무원 집무실 크기를 또 규제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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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 중국전문기자) ‘54평방미터.’ 중국 정부가 규정한 장관급 집무실 크기입니다. 27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주택도농건설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당정기관 사무실 건설표준이라는 규정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차관급은 42평방미터, 국장급은 24평방미터, 부국장급 18평방미터로 제한합니다. 간부급 공무원 집무실 크기를 제한한 규정이 처음 나온 건 1999년입니다. 이후 2009년에 발표한 적이 있고 지난해와 올해 또 다시 발표했습니다. 규정에서 제한하는 집무실 크기 가운데 부국장급 이상 고위간부의 경우 1999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자꾸 규정을 발표할까요?

‘상유정책,하유대책(上有政策,下有對策)’에 답이 있습니다. 위에서 정책을 결정해도 밑에서 대책으로 규정을 회피하는 일을 일컫습니다. 중국은 워낙 커 고대 왕조 때부터 황제와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는 어김없이 이 같은 관료들의 행태가 있었다고 합니다. 2009년에 10년 전과 같은 규정을 되풀이해 발표한 건 자금성과 백악관까지 본뜬 청사까지 등장하는 등 지방정부의 호화청사로 인한 낭비가 근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규정이 또 다시 나온 것은 시진핑 정부가 출범한지 넉달만입니다. 시진핑의 부패척결 운동과 맥을 같이하면서 신축 뿐 아니라 기존 집무실도 규정대로 고치라고 지시했습니다. 강도가 세진 겁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정부 청사 신축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했고 이 때문에 중국 각지에서는 새 청사를 짓고도 입주하지 못하는 공공기관이 늘어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에 나온 새 기준은 공공기관이 청사를 신축할 때 대형 광장이나 공원을 옆에 건설하지 못하게 했고 업무와 무관한 주거•상업용 건물을 함께 짓는 행위도 금지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나온 규정은 편법으로 집무실 규제를 회피하는 공무원을 직접 겨냥하고 있습니다.과거 규정에는 없던 화장실과 휴게실 면적까지 명시한 겁니다. 간부 집무실에 딸린 화장실은 직급에 상관없이 6㎡ 이내로 정했고 휴게실은 집무실 기준 면적에 포함해 지을 수 있게 했습니다. 집무실 크기를 제한하자 간부만이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실이나 접견실 같은 별도 공간을 만들어 편법으로 사용하는 ‘상유정책,하유대책’식 관행을 막기 위한 겁니다.

헤이룽장성 이춘시의 쉬종이 교통국장의 호화 집무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그는 2011년 7월 3층 회의실을 수리해 새 집무실로 만들었습니다. 접견실 휴게실 화장실을 포함해서 110평방미터의 크기였습니다.

지난해 중앙정부에서 집무실 제한 규정이 발표된 데 따라 헤이룽장성 정부가 집무실 크기를 줄이라고 지시하자 쉬 국장은 규정에 맞는 크기의 집무실로 집기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원래의 호화 집무실과 새 집무실을 바로 연결하는 비밀통로를 만든 겁니다. 결국 이게 문제가 돼 지난 8월 이춘시 정부는 쉬종이 교통국장을 국장 직에서 해임했습니다.

산시성(山西省) 뤼량시의 식량국장은 집무실 크기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2월 행정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네티즌 폭로로 알려지게 된 그의 집무실에는 더블베드까지 갖춘 침실이 딸려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상유정책 하유대책’을 근절시키기 위한 방안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법치주의를 선언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습니다.엄격한 법 적용으로 공무원의 재량권을 줄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행정의 투명성이 담보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부의 감사팀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행정 업무의 투명성을 높인 기반 위에서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감시역할을 할 때 호화 집무실에 대한 관료들의 욕망도 제대로 견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