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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 대영제국 그리고 삼성의 재산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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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증권부 기자) 울티모제니처(Ultimogeniture)는 ‘말자(末子)상속’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막내아들에게 아버지의 주요 재산이 넘어가는 것은 칭기스칸 시대 몽골에서 시행된 상속원칙이었다. 장자상속(Primogeniture)이 시행됐던 다른 문화권과 달리 몽골에선 먼저 태어난 아들은 성인이 되면 각자의 말과 양떼를 거느린 채 태어난 순서대로 아버지 곁을 떠나 독립했다. 막내아들이 끝까지 아버지 곁을 지키다가 아버지의 남은 가축과 천막, 그리고 ‘계승’의 정통성을 물려받았다.

가산제적 국가(Patrimonialstaat)로 평가되는 칭기스칸의 대몽골제국(Yeke Mongol Ulus) 확장의 역사도 이 같은 몽골의 재산분배 전통 형태로 나타났다. 칭기스칸은 장자인(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인지가 의심스럽기도 했던) 조치에게 “이르티쉬강 서쪽으로 몽골의 말발굽이 닿는 곳까지 네 땅”이라며 먼저 분가시켰다. 조치는 몽골 본토에서 가장 먼 오늘날 러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며 조치울루스를 건설했다. 이어 다른 아들들인 차가다이와 우구데이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자리를 잡았다. 막내인 톨루이가 칭기스칸 사후 몽골본토를 물려받았다.

대제국을 총괄하는 대칸, 즉 칭기스칸의 후계자로는 3남인 우구데이가 맡았지만 그 역시 칭기스칸의 천막을 물려받은 톨루이 가문의 눈치를 적잖게 봤다. 몽골제국 내 세력투쟁에서 말자인 톨루이 가문의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우구데이가문 출신 쿠빌라이와 톨루이 가문 출신 아릭뵈케(두 사람 모두 각자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을 칭했다.)간 목숨을 건 혈투 끝에 쿠빌라이가 승리한 이후부터다.

하지만 쿠빌라이의 원제국 성립 이후 몽골의 4한국은 이전 같은 통일성을 많이 상실한 채 저마다의 길을 따로 갔다. 쿠빌라이가 몽골제국을 총괄할 ‘정통성’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자면 ‘재산’을 ‘몰빵 상속’하지 않고 ‘균분 상속’한 탓에 후대로 갈수록 자산이 집중되지 않고 각자가 따로 놀게 된 셈이다.

조선시대 장자상속제가 자리 잡게 된 배경에도 재산권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의 저명 한국 사학자인 미야지마 히로시가 양반가의 토지와 노비 등 재산 상속을 기록한 분재기(分財記) 분석에 따르면 조선 중기까지는 남녀균분상속이었지만 대를 거듭할수록 나눠줄 재산이 줄어들면서 17세기 이후 남자균분상속으로, 또 다시 장자우대상속으로 상속법이 급격히 바뀌어갔다. 나눠줄 ‘파이’가 대를 이어갈수록 쪼그라들면서 결국엔 조그만 한 조각이라도 한명에게 몰아주는 길을 택한 것이다.

영국이 19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배경에도 장자상속제가 있었다. 영국의 차남들이 선택한 길은 ‘재산 상속에서 배제돼 손만 빨고 있거나 세상탓, 신세한탄만 한 것’과 정반대의 길이었다. 영국의 차남들은 아무리 유능해도 토지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었다. 그들은 결국 상업이나 식민지 진출 등 ‘제3의 길’이나 해외로 눈을 돌렸다. 능력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그 결과 그들이 (역사적 공과에 대한 평은 다양하지만) 세계제국의 초석을 놓았다.

삼성그룹이 연일 그룹 지배구조 재편과 관련한 깜짝 놀랄 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화학과 방산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주력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넘기는 결정이 내려졌다.(한국경제신문 특종기사다!) 이번 뉴스로 자연스럽게 이건희 회장의 장녀가 화학계열 그룹사를 맡을 것이란 세간의 일부 시나리오는 ‘신기루’가 돼버렸다. 삼성의 재산상속은 ‘균분’보다는 ‘집중’쪽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개인적 느낌이다. 거대 그룹을 물려받는 장남은 재산을 온전히 보전하는데서 더 나아가 크게 재산을 키울지, 상속에서 상대적으로 배재되는 차녀들은 조선시대 차남의 길을 갈지 아니면 영국 차남의 길을 갈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6.2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