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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CTO "중국 이미 전세계 창업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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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IT과학부 기자) 20년 전만 해도 중국은 민간 창업이 불가능에 가까운 나라였다. 정부 주도로 세운 국영기업이 아니면 투자유치는 물론 상장도 할 수 없었다. 오늘날 중국은 전 세계 벤처캐피털(VC)의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전문성을 키운 고급 인재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차세대 구글을 꿈꾸며 스타트업을 세운다.

화웨이 최고기술책임자(CTO) 리산치(李三琦) 박사는 “그 어느 때보다 ‘하이구이(海歸·해외유학파)’ 물결이 거세다”며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돌아오는 전문 인력들은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 2014’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25일 서울 서소문동 화웨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하이구이는 해외에 나가 공부하거나 기업에 취직해 전문성을 쌓은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는 고급 인력을 일컫는다. 발음이 같아 ‘바다거북(하이구이·海龜)’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리 CTO는 베이징우전대학(北京郵電大學)을 졸업해 1980년 북미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 하이구이 1세대다. 중국 정부에서 국비 지원을 받아 캐나다 워털루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그는 “예전에는 유학생들이 애국심과 책임감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왔다면, 이제는 중국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돌아온다”고 했다.

리 CTO는 “미국은 기술 분야에서 여전히 기회의 땅이지만, 중국은 기술 뿐 아니라 문화, 외식산업 등 모든 면에서 성장하고 있다”며 “적용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 매력에 이끌려 이미 좋은 일자리를 구한 중국 젊은이들도 본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일하다가 돌연 중국으로 날아와 스타트업을 세우는 사례가 최근 참 많다”며 “이들은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내 잘나가는 정보기술(IT)기업도 마다하고 자신만의 회사를 세운다”고 했다.

사용자 모으기도 미국보다 훨씬 쉽다고 했다. 그는 “어떤 서비스가 일정 기간 미국에서 100만 이용자를 모을 수 있다면 중국에서는 500만~1000만 이용자를 모을 수 있다”며 “중국 정부의 창업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이미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창업 중심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약 20년 전만 해도 중국이 창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그는 두 차례 창업한 경험이 있다. 1994년 베이징에서 중국 최초의 데이터 네트워크 장비 벤더인 ‘가오홍 텔레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2000년 국유기업 ‘다탕(大唐)텔레콤’이 인수)’와 1999년 미국에서 네트워크 스위치 제조사 ‘산테라 시스템즈(2003년 나스닥 상장기업 ‘테케렉(Tekelec)’이 인수)’를 세웠다.

가오홍 설립 당시 중국 정부와 조인트벤처(JV)를 세우려던 그는 “정부 측에서 ‘아무도 투자 서류에 사인할 수 없다, 사인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는 말을 들었다”며 “얼마나 정부가 창업에 관심이 없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 기업은 투자유치는 물론 상장 조건도 맞출 수 없었다”며 “90년대까지 VC라는 말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해외 자금도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 리 CTO는 “미국 기업의 평균 투자회수 기간이 5년이라면, 중국은 3년밖에 안 된다고들 한다”며 “미국 VC 자금이 몰리고, 해외 단기투자자도 들어오고, 신생기업에 투자하는 중국계 사모펀드도 막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하이구이 트렌드는 점점 거세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창업 기업을 매각한 뒤 2009년 화웨이에 합류했다. 미국 댈러스의 화웨이 지사와 소통하다 CTO 제의를 받은 것이다.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의 ‘비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리 CTO는 “런 회장은 기술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략적이고 비전이 뚜렷한 사람”이라며 “비전 뿐 아니라 실행력도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런 회장이 중국 선전에 화웨이 본사를 세울 때 7000대의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하자고 해서 모두들 어이없어했다”며 “당시에는 자동차 자체가 많지 않을 시절이어서 주차 고민 자체가 없을 시절이었는데, 런 회장은 그렇게 늘 한 발 앞서가는 식”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 국립전기통신연구센터에서 리서치 과학자를 거쳐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테뉴어(정년 보장) 교수로 지내며 20여명의 박사과정 학생을 길렀다. 이명종 뉴욕시립대 교수, 김영용 연세대 교수, 정송 KAIST 교수, 김용환 LG그룹 부사장과 박상규 삼성전자 연구원 등이 그의 제자다.

그는 “이번 방한 기회를 통해 SK텔레콤과 KT의 기술책임자를 만나 5세대(5G) 네트워크 생태계에 대한 협력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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