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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 전 소금전매 도입자의 비극적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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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증권부 기자) 2000년 이상 지속됐던 중국의 소금전매제도가 조만간 폐지된다고 한다. 2016년부터 소금 가격을 자율화하고 2017년에는 신규 사업 면허를 발급한다는 것이다.

소금전매제 폐지의 이유로는 재정(財政) 수입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드는 반면, 소금전매를 유지하는 비용은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데, 이제 중국에서도 정부기관이 아니라 시장에서 민간이 소금을 거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중국 국가권력 소금독점과 관련해서 상홍향(桑弘羊)이란 인물이 절로 떠오른다. BC110년 한나라 무제는 낙양 상인 집안 출신인 상홍양을 발탁해 국가 재정을 맡겼다. 국가 재정을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농민들에게서 걷는 세금을 늘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농민들에게서 쥐어짤 수 있는 한도 만큼 세금을 쥐어짰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상홍양은 소금과 철을 국가에서 독점하는 ‘염철전매(鹽鐵專賣)’와 유통구조 개선 등을 통해 국고를 늘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

태행산 동부 지역에서 대형 물난리가 나면서 70여만 명의 농민이 땅을 잃고 떠도는 사태가 발생했다. 상홍양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산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일종의 재산세인 ‘산민전(算緡錢)’을 거뒀다.

산민전은 돈이 많은 상인과 수공업자, 고리대금업자 등에게 자발적으로 자산을 신고하게 해서 2민(緡, 1민은 1000錢)당 10%, 규모가 작은 상인에겐 5%의 세금을 걷는 식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부자세’를 통해 위기에 처한 농민을 구하려한 셈이었다.

자산가들을 겨냥한 정책이 시행되자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던 상인들은 재산을 은닉하고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정은 자산을 은닉한 사람은 일 년 동안 변방에 보내고, 신고에서 누락된 민전을 모두 몰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숨겨놓은 자산을 신고한 ‘세파라치’에게 몰수재산의 반을 주겠다고 하면서 상인들을 압박했다.

이 같은 정책으로 일부 세수가 느는 효과는 분명히 있긴 했다. 하지만 사회에선 상대적으로 자산가들의 부담이 늘면서, 어렵게 부를 쌓기보다는 돈을 버는 대로 바로바로 써버리는 소비 행태가 나타났다.

이에 대해 당대의 관료들은 “황제가 고기 음식을 줄이고 비용도 절약해 내정(內廷)에 모아둔 돈을 꺼내 백성들을 구제하고 부세도 관대히 해줬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밭에 나가 농업에 힘쓰지 않는다”며 “상업에 종사하는 자만 더욱 늘고, 가난한 사람은 저축한 것이 없어 오직 조정에만 의지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백성들은 소비에 치중해 저축하거나 투자하지 않았다”는 '사기'의 사평은 후대에 두고두고 상홍양의 정책에 꼬리표로 따라다녔다.

사마천은 한무제 시대 상인 출신들이 대거 중앙정계에 진출한 것도 못마땅해 했다. 양을 천여 마리나 길렀다는 복식(卜式) 등이 장사로 조성한 막대한 재산으로 관직을 샀다며 직설적인 공격을 했다. 공근(孔僅)과 동곽함양(東郭咸陽)에 대해선 “염철전매로 부자로 된 사람만 관직에 등용된다”며 “상인만 관료로 들어올 뿐 올바른 인재는 선택받지 못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나마 ‘부자세’ 도입으로도 국가의 재정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BC99년 한나라 장군 이릉이 흉노에 사로잡히자, 한무제는 다시 20여만 명의 군사를 투입했다. 상홍양은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세원을 발굴해야 했다.

상홍양은 소금과 철에 이어 술을 국가에서 독점키로 했다. 술의 원료를 포함해 생산에서부터 제조,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국가가 관리키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도한 세원 확대 정책은 “국가가 생활필수품을 매개로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동중서(董仲舒)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당초 새로운 조세제도 도입 시 고려했던 효과와 달리, 실물경제의 왜곡과 비효율도 계속되면서 상홍양의 처지도 어려워졌다. 이후 한무제마저 죽어버리자 강력한 바람막이 지지 세력을 잃은 상홍양의 입지는 빠르게 축소됐다. 결국 상홍양은 BC80년 75세의 나이로 모반죄에 몰려 멸족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모자란 국고를 채우기 위해 소금의 국가독점권을 도입·확대했던 인물의 최후는 비극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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