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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박람회: 이다지 한국사 교사 "한국사는 암기보다 이해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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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희 한경 잡앤조이 기자) 최근 대기업들이 한국사를 채용시험에 자주 활용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는 훨씬 전부터 한국사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EBS 한국사 스타 강사 출신의 이다지 인천 하늘고 역사 교사는 “한국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암기보다는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왕은 이름에 주목해서 봐라

왕의 이름에는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 광개토대왕 이름은 넓을 광(廣), 열 개(開), 흙 토(土)로 구성돼 있다. 넓은 영토를 개척했다는 의미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도 마찬가지다. 길 장(長), 목숨 수(壽). 장수왕은 고구려 평균 수명인 23~25세를 훌쩍 넘은 98세까지 살았다.

무왕의 무는 싸울 무(武)다. 이 한자가 이름에 들어간 왕은 대개 영토확장에 힘을 썼다. 전쟁도 많이 했다. 무왕은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당나라를 먼저 공격하기도 했다. 한나라의 무제도 흉노족을 토벌하는 등 전쟁을 자주 일으킨 왕이다.

조와 종이 붙는 이유도 있다. 조나 종은 왕이 죽고난 뒤에 붙이는 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태조는 나라를 세운 왕이다. 그래서 여러 명이 될 수 있다. 고려에도, 조선에도 있다. 성종은 나라의 초창기, 체제를 정비했다는 의미다.

# 인물에 감정이입하라

해당 인물의 가정환경, 성장배경, 처한 시대적 상황 등에 대해 알면 이해하기 훨씬 수월하다. 이런 개인 요소가 인물의 행동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시험에 가장 많이 나오는 왕 중 고려 광종이 있다. 광종은 고려 초기 4대왕이다. 당시 상황을 보자. 호족이 강하고 왕권이 약했던 시대다. 호족의 권한이 센 건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당시 광종은 어머니가 29명이었다. 아버지인 왕건이 29명과 결혼해 아들만 25명을 낳았다. 이들끼리 피튀기는 왕권 쟁탈전이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일.

만약 여러분이 광종이라면 뭘 해야 할까? 왕권을 강화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호족세력이 반발하니 녹록치 않다. 그래서 우선 이들과 친해지기로 한다.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면서 8년을 기다린다. 그런 후 본격적인 왕권강화 작업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호족의 요청을 들어주느라 바닥난 국가 재정을 메우기 위해 노비안검법을 도입한다. 평민이었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풀어주자는 것이다. 호족들은 사유재산 개념의 노비를 풀어주기를 원하지 않지만 반발하지 못한다.

노비를 풀어준다는 것은 호족의 재산을 뺏는 개념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가의 군인이라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왕이 자기 군사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공복도 제정해 옷 색을 관직에 맞춰 바꾼다. 서열의 맨 위에 왕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반발하는 호족은 가차 없이 숙청했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고려 초기 공신이 3200명이었는데 광종 후 42명만 남는다. 이렇게 광종은 왕권강화를 이뤘다.

#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

곤충을 머리, 가슴, 배로 나누듯 역사도 고대, 근대, 중세, 현대 시대로 나눠야 한다. 고려를 예로 들어보자. 고려는 무신정변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이게 1단계다. 전기는 다시 초기, 중기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쪼개면 쪼갤수록 시대의 성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고려 초기 가장 유력한 세력은 당연히 고려 이전 시기에서 영향을 미친 호족이었다. 이 시기를 호족지배기라고 한다. 이들은 여러 특권을 누리며 귀족이 된다. 바로 문벌귀족이다.

여기에 반대해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시대가 무신집권기다. 이때 세계를 호령하는 종족이 침략하는데 바로 몽골족이다. 그러면서 몽골이 세운 나라 원나라가 침투한 원 간섭기가 시작된다. 원 간섭기에는 ‘권문세족기’라는 친원파가 득세하는데 다시 이를 누르며 등장한 게 신진사대부다.

이러한 흐름을 머릿 속에 넣어두면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특히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화에는 불상, 석탑, 절, 양식 등 어려운 개념이 많아서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 한다. 우선 흐름부터 이해해 보자.

호족지배기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시대에 대표적인 게 불상인데 공통적으로 매우 못생겼다. 가분수에다 몸의 비례도 안 맞고 크기만 하다. 왜 그럴까? 호족지배기이기 때문이다. 호족들은 자기 권력을 과시하고자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불상을 거대하게 만들어 마을에 전시했다. 이 시기의 불상이 크고 얼굴도 제각각인 이유다.

문벌귀족기은 어떨까? 귀족들은 남과 구분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민과 어울리는 것도 싫어한다. 서민과 구별해주는 게 바로 차다. 당시 귀족들은 차 마시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찻물을 담을 수 있는 도자기가 발달했고 이 도자기는 귀한 옥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무신집권기엔 몽골족과 싸우며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했다. 당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시대가 바로 고구려다. 그래서 이때 고구려 시조인 주몽을 다룬 동명왕편이라는 역사서가 탄생했다.

원나라간섭기는 일제강점기와 비슷하다. 반 식민지시대였다. 그래서 민족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이전 시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결속시키는 게 바로 단군신화였다. 삼국유사가 집필된 이유다.

# 근현대사는 연도가 아닌 흐름을 봐라

근현대사는 연도를 보려고 하면 길을 잃는다. 스토리를 기억하자. 근현대사는 사건과 사건이 서로 맞물려 있어 어느 한 지점을 놓치면 모두 무너진다.

청일전쟁을 보자. 서로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싸움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의 금싸라기 땅인 요동반도를 요구한다. 이때 요동반도에 관심이 많았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 등 강대국을 모아 제동을 건다. 삼국간섭이다. 결국 일본은 요동반도를 청나라에 돌려준다.

이를 본 조선은 그동안 최강대국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이 일본에, 일본이 다시 러시아에 패하는 모습을 보며 친러시아 정책을 편다. 요동반도를 뺏긴 일본은 우리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을 간다.

그러자 국민들은 고종에게 귀국을 요청한다. 이 국민단체가 독립협회다. 고종은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신을 황제로 규정한다. 그리고 황제국가에 맞는 개혁이 필요하다며 주장한 게 광무개혁이다.

# 조약・개혁은 주체자를 봐라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게 조약과 개혁이다.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용이 아닌 주체자인 사람을 보자.

갑신정변은 김홍균, 서재필 등 개화파가 일으켰다. 이들의 공통점은 엘리트라는 것. 이들이 생각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험에 잘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들은 토지 관련 세금인 지조법을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농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내 땅을 갖는 것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 내세운 토지균등분배가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다.

<취업준비생을 위한 한국사 대비 포인트>
- 왕은 이름에 주목해서 봐라
-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라
-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
- 근현대사는 연도가 아닌 흐름을 봐라
- 조약・개혁은 주체자인 사람을 봐라. (끝)

오늘의 신문 - 2024.06.2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