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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신 청명상하도'가 화제가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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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 중국전문기자) 2010년 상하이엑스포를 취재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작품이 있었습니다. 중국관에 있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가 그것입니다. 국보급 명화(名畵)로 꼽히는 청명상하도는 청명절 도성 내외의 번화한 강가 정경을 묘사한 그림인데 초대형 동영상으로 재현했죠.

당시 안내원의 소개로 작성한 기사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북송시대 화가 장자이돤(張擇端)이 당시 수도 개봉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을 토대로 만든 디지털 영상물로 원작의 700배"로 소개됐더군요. 원래 가로 528.7㎝,세로 24.8㎝인 그림이 높이 6.3m, 길이 130m의 첨단 영상물로 다시 태어난 겁니다.

원작에는 약 600명이 있는데 이 디지털 영상에는 주간에 691명, 야간 풍경에는 377명이 등장한다는 게 당시 안내원의 설명이었습니다. 시장의 좌판에서 물건을 사거나 술을 마시면서 손가락을 내미는 게임을 하고, 가마와 말을 타는 장면 등이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관람객들을 1000년 전 시대로 빠져들게 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새삼 스럽게 4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요즘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진작품 때문입니다.'신(新)청명상하도'로 불리는 이 작품은 얼마 전 광둥성 롄저우시에서 열린 사진전시회에 ‘청명상하도 2013’이란 이름으로 출품된 작품입니다. 지난 22일 광둥성 도농규획설계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이 사진만 보면 중국의 갖가지 사회현상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디에서 내린 짧은 머리의 남자가 수십 명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팻말에 “내 아빠는 리강이야”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2010년 중국을 떠뜰썩하게 한 교통사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허베이성 바오딩시 베이스구 공안국 부국장 리강(李剛)의 아들이 음주 뺑소니 사망 사고를 내고 붙잡히자 "내 아빠가 리강이야"라고 큰소리를 쳐 특권층에 대한 분노를 촉발시켰었지요. 당시 피해자는 농민공의 딸이었고 이 사건으로 리강은 직위 해제됐고, 아들은 징역 6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후 ‘내 아빠는 리강이야’는 유행어가 됐지요.

‘부양해 줄 의붓아버지를 구한다(성관계를 대가로 집과 돈을 구하는 의미)’는 팻말을 거리에 세워 두고 앉은 긴 머리 여인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팻말엔 여인의 신장과 체중까지 적혀 있습니다. 노점상을 거칠게 때리는 노점단속상의 모습은 과잉 공권력 사용으로 실제 적지 않은 노점상들이 세상을 떠난 가슴 아픈 현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성매매업소 단속에 걸려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오는 여인의 모습과 성매매 용품 매장 앞에서 경찰에게 뭔가를 건네는 상인의 모습도 사진으로 묘사됐습니다. ‘청명상하촌 별장이 평방미터당 88만위안부터’라는 팻말도 보입니다.

성장지상주의를 보여주는 장면도 있습니다. 강 위의 다리에 걸린 팻말의 구호는 ‘GDP(국내총생산) 성장 목표를 서둘러 달성하자’입니다. 2003년 출범한 후진타오 정부가 과학적발전관을 내세우기 전 까지만 해도 주류를 이뤘던 성장지상주의를 비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시진핑이 얘기하는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는 GDP의 양보다는 질을 강조하지요.

중국에선 청명상하도가 사회의 번영과 아름다움 그리고 희망을 보여주는데 왜 저질 풍자로 멋진 작품을 더럽히느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창의적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도 적지 않습니다.

정작 이 작품을 완성한 다이샹은 중국의 최근 40년간의 이슈를 담으려 했다고 말합니다. 두 명의 조수와 함께 2011년 말부터 시작한 촬영은 지난 6월에야 끝났습니다. 사진촬영에 동원된 사람만도 수 천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누군가 한국판 청명상하도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