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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흘렀던 황하? 중국 스모그의 근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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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증권부 기자) 중국의 스모그 피해 관련 소식이 연일 전해지고 있다. 중국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에선 한 시민이 ‘당국의 스모그 대책에 불만이 매우 많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시장에게 보내 중국 온라인이 들끓었다고까지 한다.

사실 스모그의 원인인 황하 인근의 거대한 황토는 역사의 시작 시점부터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각종 역사기록은 오늘날의 자연경관과 전혀 다른 모습의 황하유역 지대 모습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에서 2000년 전까지만 해도 ‘황하(黃河)’는 ‘황하’라고 불리지 않고 단순히 강이란 뜻의 ‘하(河)’라고 지칭됐다. 황하가 오늘날처럼 누런 흙탕물이 된 것은 진·한(秦·漢) 시기 중국 북서지역에 농업이 발전하면서 ‘하(河)’ 주변 산림이 벌채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하 중류 일대를 뒤덮었던 초지가 경작으로 사라졌고, 중국 북서지역 일대 온대지역에서 자라던 나무를 베어 수도 건설에 필요한 목재로 충당하면서 강물의 색깔도 급속히 누런색으로 변해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물속을 떠다니던 부유물이 늘고, 부유물이 침전되면서 강 주변 토지의 침식은 가속됐다. 결과적으로 황하의 하상(河床)은 주변 평야지대보다 높아졌다. 또 강물에 침식된 토양의 일부는 하천가나 평원 또는 삼각주 지역으로 내려와 쌓였다. 상류 지역 벌목으로 후기 제국시대에는 광둥 삼각주 유역이 급격히 사석(沙石)으로 채워졌다.

황하와 다른 장강(양쯔 강) 하류의 사례긴 하지만 장강 하류의 경우도 방파제를 쌓아 삼각주에 바닷물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해 농지를 늘려가기도 했다. 장강 하류 남쪽 하안 강남지역 대부분은 이런 개간방식으로 형성됐다. 오늘날 상하이는 13세기 무렵 바다였던 지역이 육지로 탈바꿈한 데 그 시원을 두고 있다. 대평원이 연상되는 상하이 지역에서 산을 구경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에 대해 중국사학자 마크 엘빈은 장강 하류 지역을 두고 ‘중국의 네덜란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중국은 시대와 왕조는 바뀌어도 인공적인 ‘치수’가 중요 정책과제로 떠올랐다. 중국의 역대정권은 기본적으로 인공제방을 계속 쌓아 평야지대의 안전을 도모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2000년 이상 되는 중국사 시대 전체를 통틀어 벌목은 꾸준히 진행됐다. 중국 전역을 뒤덮었던 숲은 급속히 사라졌다. 벌목의 위험은 초기부터 감지돼 고대에 동물을 포함한 자연자원을 보호하는 임무를 띤 ‘우형(虞衡)’이란 관직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1000년 이상 시대가 흐르면서 우형이란 관직은 의미가 변해서 당나라 때가 되면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궁정에 목재를 공급하는 담당부서가 됐다”고 한다.

이 같은 결과가 누적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인 1983년에는 마룻바닥과 계단, 전봇대, 광산용 자재, 철도 버팀목, 관 제작에 목재사용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질 지경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목재 보유량은 지금도 세계 평균의 8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의 목재 부족의 근원은 한마디로 고대부터 내려온 환경파괴 역사가 누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한국에까지 큰 피해를 미치는 중국 스모그의 원인에는 수천년에 걸친 중국의 무분별한 환경파괴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