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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시진핑 그리고 디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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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 중국전문기자) 중국의 금리인하를 두고 여러 해석들이 나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 위험에 선제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겁니다.

중국의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6%로 4년8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전년동기 대비 2.2% 떨어져 32개월 연속 하락세입니다. 중국 사상 최장 하락세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 중국 공산당이 아직도 당규에서 떠받들고 있는 칼 마르크스의 디플레이션 탈출법을 살펴볼 만합니다. 마르크스는 디플레이션 탈출 방법으로 크게 3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전쟁을 통한 생산력 파괴, 새로운 시장 정복, 그리고 기존 시장에 대한 철저한 착취가 그것입니다(홍성국 저서,디플레이션 속으로). 전쟁, 정복, 착취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에서 투쟁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 마르크스의 접근법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시진핑 정부가 교조적으로 마르크스의 조언을 따르지는 않지만 중국 특색에 맞게 변형한 디플레이션 탈출법을 내놓고 있다는 겁니다.

우선 생산력 파괴입니다. 여기엔 과잉공급이 디플레이션 원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실제 1930년 대공황 때의 디플레이션이나 1990년대 일본에서 디플레이션 모두 과잉공급이 주범중 하나였습니다. 중국은 그러나 전쟁 대신 환경규제와 에너지절감이라는 망치를 들었습니다.철강 등 과잉공급이 심각한 전통 업종 가운데 환경보호 기준에 이르지 못하거나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공장을 도태시키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지방정부의 저항으로 쉽지 않지만 시진핑 정부출범 이후 지방정부의 기업 경영 간섭을 축소하면서 과잉공급 공장의 생산력 파괴가 점차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 정복은 총칼을 들고 식민지를 만드는 과거 제국주의의 침략을 떠올리게 합니다. 중국은 그 대신 현대판 실크로드 전략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잇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동남아와 남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에 닿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라는 두 개의 현대판 실크로드를 추진 중입니다.

이를 위해 실크로드 기금 조성, 해양 실크로드은행 설립,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추진 중입니다. 중국 언론에선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내 과잉공급된 철강 시멘트 등이 해외시장에 공급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실크로드에 인프라 투자에 쓰여질 전망입니다.

때문에 실크로드 전략은 1950년대 유럽의 전후 복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달러 원조를 해주면서 동시에 과잉공급된 철강 등을 수출한 마셜플랜에 빗대기도 합니다. 자국 통화 국제화와 과잉공급 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기존 시장에 대한 착취입니다. 여기서는 이번 금리인하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금리인하는 대출 금리 인하폭(0.4%포인트)이 예금 금리 인하폭(0.25%)보다 큰 비대칭적 금리조정입니다. 2002년 이후 이번까지 23차례의 금리조정 가운데 8차례 비대칭 금리조정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드물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이번 조정은 중국 은행들의 예대마진을 크게 축소시키게 됩니다. 예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예금 상한선까지 금리를 끌어올릴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번 금리조정 때 예금금리 상한선을 종전의 1.1배에서 1.2배로 확대했습니다. 이미 닝보은행 칭다오은행 등이 상한선까지 예금금리를 높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은행의 경우 대출금리는 크게 떨어지는 대신 예금금리는 변함이 없게 된 겁니다. 이번 금리조정으로 가장 타격을 입는 층이 은행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를 두고 중국 언론에서는 중국 정부가 부자 아들인 은행의 이익을, 가난한 아들인 기업에 떼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습니다. 중국 500대 기업 가운데 은행 17곳이 낸 순이익이 절반 이상이라는 지표는 중국 은행들의 높은 수익성을 보여줍니다.

은행을 착취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은행들로서는 속이 탈 일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은행의 수익성은 나빠지지만 이번 금리인하로 부실채권 증가 속도가 둔화되는 등 기업의 파산 위험이 줄어 은행들의 펀더멘틀은 좋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합니다.

마르크스식 디플레 탈출법은 통화정책 뿐 아니라 통상정책 등 다른 정책들과 함께 패키지로 대응책이 마련돼야 함을 보여줍니다. 한국도 디플레이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에 대처하지 않으면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지만 과잉대응하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속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어떤 디플레 대응방안을 내놓아야 할까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