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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마천루 저주'는 열등감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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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증권부 기자)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는 널리 통용되는 표현이다. 나름 근거가 없는 분석은 아니지만 인류 최초의 ‘마천루 저주’는 높은 빌딩을 만들지 못한 자가 지닌 일종의 열등감과 질시의 산물이었다.

요즘도 초고층 건물을 묘사할 때 흔히 ‘바벨탑’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기독교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에는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신의 허락 없이 인간의 욕심으로 짓는 거대한 수직 구조물’은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신성모독이자 불손, 오만의 상징처럼 돼 버린 것이다.

특히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탄생한 바벨탑이 신의 저주를 받아 벼락을 받아 산산조각이 났다”는 바벨탑의 스토리는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계의 표현이자, 이교도를 징벌한 기독교 일신교 신앙의 상징적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후 기독교권에서 바벨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오랫동안 이어져 중세 시대에는 연옥 등이 바벨탑의 형상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신화 속 허구로 치부돼 왔던 바벨탑 이야기에 대해 건축전문가 임석재 교수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바벨탑 이야기가 고대 이스라엘과 메소포타미아 간 경쟁관계, 적대관계를 비롯해 기술적인 비대칭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약소국이었고 기술 후진국이었던 이스라엘이 강대한 기술선진국 메소포타미아에 대해 지녔던 열등감과 질시가 반영된 산물이라는 해석이다. 아랍 민족이 지은 바벨탑은 당시의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총동원된 초대형 고층빌딩이었던 반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 같은 탑을 지을 능력이 없어 깊은 열등감에 빠졌다는 설명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바빌론에 들어선 네부카드네자르2세의 궁성과 (아마도 지구라트 형태를 띠었을) 바벨탑은 당시 최첨단 호화 건축물이었을 것이고, 이곳에 노예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인들로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기술격차를 실감하는 공간이 됐다는 추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벨탑 종류의 수직 구조물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때마침 바벨탑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의 유일신 종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석한 게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두 민족이 고층 건축물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언어적 측면에서도 두드러진다는 게 임 교수의 판단이다. ‘바벨’이란 단어의 뜻은 두 민족이 다르게 쓰였는데 메소포타미아 아카디아 문명에선 ‘신의 문(gate of God)’을 의미하는 바빌리(babili)를 어원으로 하고 있지만 같은 단어가 유태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에서는 ‘뒤죽박죽’, ‘혼란’ 등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결국 “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인간의 욕심만으로 지은 수직구조물은 혼란으로 귀결될 뿐”이라는 기독교적 교훈은 세속적으로는 그 같은 수직 구조물을 지을 능력이 없던 이스라엘인들의 후진성과 질투심을 합리화하는 구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몇 년간 중단됐던 서울 상암동의 랜드마크타워 건설이 재추진된다고 한다. 일각에선 ‘마천루의 저주’ 우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상징하는 진정한 랜드마크의 성공사례가 되길 바라면서 ‘마천루’에 얽힌 질시의 역사를 한 번 되짚어 봤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