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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실세 김재원 의원의 극적인 '파워쉬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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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진 정치부 기자) “형님 000입니다. (생략)...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을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중이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는대로 할 생각이오니 오해가 있으면 꼭 풀어주시고 저를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13년 6월께 한 매체에 노출된 문자메시지를 보면 조폭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자는 김재원 새누리당의원이 김무성 의원에게 보낸 것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읍소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김 의원은 NLL 문서 사전유출을 최고회의에서 시인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정치적 코너에 몰리게 됩니다.

당내에서는 그 사실을 언론에 흘린 당사자로 김재원 의원이 지목된 것이죠. ‘무성대장(무대)'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 의원은 노발대발했겠죠. 그래서 김 의원은 이 같은 문자로 해명한데 이어 나중에 김의원을 찾아가 허리를 90도로 굽혀 사과를 했고, 이 장면조차 카메라에 노출되면서 체면을 구기게 됩니다.

1년 5개월여가 지난 2014년 11월20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 김무성 대표체제에서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은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누리과정 예산편성에 대한 여야 합의를 걷어차 버렸습니다. 황우여 교육부총리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가 아침에 전격합의한 내용을 백지화시킨 것입니다.

그는 “원내 지도부와는 일언반구 협의가 없었으며 그 합의를 즉각 중지하도록 지시했습니다.황 장관이 월권한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발언 내용만 본다면 마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이 던진 말로 보일 수 있을겁니다. 불과 1년5개월만에 친박 여권실세로 변한 김 의원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누리과정 예산 국고 지원 문제를 두고 여야간 기싸움이 팽팽하게 이어지던 가운데 20일 황 장관과 국회 교문위 여야 간사들이 구두합의를 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와 반박 기자회견을 연 겁니다.

그는 “(야당) 간사들은 모르겠는데 우리당 간사는 원내지도부 지시를 존중해서 합의하길 저희들은 요구했다”며 “그런 당 지도부 의견 따르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그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쯤 되면 김 수석부대표의 발언 무게가 당대표나 원내대표 못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런 느낌이 기자들만 들었던 게 아닌 듯 싶습니다. 곧바로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여야 합의는 김재원 수석이 무마시켜도 되는 것인가. 아이들의 보육을 자기 손에 넣고 뒤흔들어도 되는 것인가. 새누리당이 김재원 당이냐”며 대놓고 김 수석부대표의 이날 합의 부인 발언을 맹비난했습니다.

김 수석부대표 기자회견 후 곧바로 간사직 사퇴 기자회견을 연 신성범 새누리당 의원은 굳이 지도부와 협상을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이게 상임위 재량권이냐 아니면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차원이나 원내대표단 간 협상사안인지 잘 모르겠다”며 “교문위에서 올리면 예결위에서 적절하게 여야 협상을 통해 증액과 감액 규모를 정하고 그에 맞게 지방채를 연동할 수 있기에 굳이 (야당과의 구두합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로 현재 김 수석부대표의 당내 영향력은 하늘을 찌릅니다. 구두합의가 새정치연합 쪽에서 먼저 나오자 김 수석부대표는 신 의원을 불러 큰소리를 냈다는 말도 들립니다. 직전 당 대표를 맡았던 황 장관에게까지 “월권행위를 했다, 협상 한두번 해 보냐”고 큰소리를 쳤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그의 발언 수위는 강력해졌다는 게 여권 내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자칫 오늘처럼 독단으로 비춰질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감지됩니다.

김 수석부대표가 당 지도부의 핵심 브레인(두뇌)으로 성장한 힘은 그가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검사 출신의 김 수석부대표는 당 내에서도 판단이 빠르고 주관이 강해 기자들이 필요한 말을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전하는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이런 빠르고 단호한 판단력을 앞세워 각종 여야 협상에 있어 판사 출신인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함께 앞장서 총대를 매는 등 ‘악역 원투펀치’를 자처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달 말 마무리된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었는데요.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사법체계 원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론을 끝까지 관철시켰습니다. 지난 9월 유가족이 수사권 기소권을 포기하면서 여야 협상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김 수석부대표는 어김없이 전면에 나서 내용을 정면 부인하면서 야당과 유가족을 끝까지 압박했습니다.

유가족들이 협상장에서 배석을 거부할 정도로 김 수석부대표는 악명은 대단했습니다. 그의 고집과 추진력으로 야당과 유가족에게 넘어갈 뻔한 협상 방향을 여러 차례 돌려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불편한 역할을 자처해 처리했으니 자연스레 그에게 크고 작은 힘이 생길만도 하지요.

오늘 일로 여당 실세임이 확인된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누리과정 예산편성 문제를 비롯해, 공무원연금 개정안 연내 처리, 4대강·자원외교 ·방산비리(사·자·방) 국정조사, 12월 2일 내 예산안 처리 등입니다. 독단으로 비춰질 정도로 당내 막강 파워를 가진 김 수석부대표가 또 다시 총대를 매고 어떻게 이 꼬인 실타래들을 하나하나 풀어갈지가 향후 그의 정치인생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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